신춘 「중앙문예」시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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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몇 몇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식 송사의 마지막 구절이
키 작은 여학생들을 일제히 흐느끼게 할 때
서울 어느 목공소 조수로 취직했다는 광오와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한 상동이의 얼굴은
금간 유리창 너머 갈매기 두 마리로 날아오르고
교정 구석 단풍나무 한 그루로 선
나는 노을이 지는 바다를 훔쳐 보았다.
싸락눈 잘게 뿌리던 날
문뜰나루 건너온 그놈들이
조회시간에 불쑥 내민 김뭉치를 받았을 때
지방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정적인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 된 나는
그놈들의 부르트고 째진 손등과
교실바닥에 나뒹굴던 해우무침 조각을 보고
바다를 따라 흔들리는 유채꽃의 희망과
황토밭을 흐르는 고구마 줄기의 자유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일까.
해우 한 장보다도 얇은 졸업장을 주면서
바닷가 갯물냄새 투성이의 아이들과
마지막 뜨거운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빈 칠판에 갈매기 두 마리를 그리고
유리창 밑에 숨어 바다를 보며 울었다.
서울의 낯선 어둠을 깎는 대패질소리와
절망마다 강하게 내리박는 못질소리가
짧은 편지 가득 들려 오는데
앨범에 묻어두었던 흑백의 그리움이
문뜰나루 갈매기 울음소리에 섞여
옹암리 앞 푸른 바다로 출렁이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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