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영화『전쟁과 평화』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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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산국가에서 제작된 한 영화의 국내TV방영문제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소련의 국영영화사가 제작한 세계적 문호「레오·톨스토이」원작『전쟁과 평화』를 MBC―TV가 수입, 신정연휴에 특집으로 방영하기로 돼있었다.
바로 그 영화가 공산권 작품이라는 이유로 지금 방송심위에 의해 검토되고 있고 당국은「정책적인 차원에서」방영여부를 결정할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TV영화의 사전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방송심의위원회는 내용에 별문제가 없음을 시인하면서도 당국의 방침이 결정될 때까지 방영을 보류키로 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이데올로기에 있어서 문제가 될 부분은 없지 않은가』하는 폭인 것같다.
또 순수예술작품일 경우 공산권에도 서서히 문호를 개방해야할 것이며 이번 경우가 그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신중한 긍정론을 펴는 폭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금기시 해왔던 공산권 영화가 갑자기 대중매체인 TV를 통해 일제히 전국에 방영되는데 따른 충격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제시하고 있다.
작품『전쟁과 평화』는 여기서 사족을 불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세계가 공유하는 고전이요, 명작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이 소설이 완역돼 나온지가 오래됐고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가 몇차례 상영된 바도 있다. TV에서도 물론 방영된 적이 있다.
문제는 원작 자체가 아니고 이 원작이 우리와 정식국교가 없는 공산국가인 소련에서 만들어졌다는데 있다. 소련의 대표적인 현역 감독및 배우가 등장하고, 영화인들이 이 원작을 각색하고 제작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영화화란 물론 원작의 기둥 줄거리를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원전에 대한 해석과 방향설정에 따라서는 현재의 목적이나 상항의 필요성에 부합되도록 각색 내지 퇴색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영화의 TV방영에 앞서 경계해야할 점은 바로 원작의 왜곡 여부일 뿐이다.
그것도 우리가 이들의 왜곡의도에 말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차원에서라기 보다는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청소년들이 이 고전을 잘못 인식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실재한다면 문제된 양면이나 대사의 삭제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하다. 그것은 이제까지 해온 일이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는 개방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공산권일지라도 내용만 좋으면 문학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소개되고 있다. 우리의 고전 또는 근대작품들도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에서 연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크렘린궁 사진이 들어 있는 외제캘린더를 세관에서 찢어내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TV뉴스에서는 공산국가 화면이 방영되어도 아무 탈이 없다.
소련을 무대로 한 외국제영화가 상영된 적도 있다. 한편의 소련영화, 그것도 우리가 그 내용과 평가를 알고있는 한 고전이 TV에 방영됐다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만큼 우리 국민의 사상기반이 허약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부국은 앞으로 있을 소련및 공산권과의 외교·문화·경제교류의 전망까지를 놓고 신중한 고려를 하겠지만 문화에 관한한, 그것도 인류가 공유하는 고전에 관한한 개방적인 쪽으로 기우는 듯」시대의 진운에도 맞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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