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쌍무협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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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의 커다란 관심사인데도 쉬쉬하며 진행된 한미통상협상의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양측의 의견일치 내지는 접근을 본 저작권에 관한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자 우리 출판문화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정부는 당초 미국측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저작권법과는 별도의 임시조치법을 마련,외국 저작물의 무단 불법복사(리프린트)는 물론 번역까지 금지시키고 외국 저작자나 출판사와의 협의가 불가능할 때에 한해서만 일정한 공탁금을 걸고 그 저작물을 출판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둘 계힉이었다.
그러나 이번 협상과정에서는 86년4월까지 외국인의 저작권보호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 입법조치를 끝낸뒤 87년부터 시행하고 88년까지는 국제저작권 협약에 가입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임시조치법은 자연 백지화되어 출판계가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던 그 제도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난 11월 우리 출판계대표들은 저작권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미국에가 그곳 저작권 보호단체 대표들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 양측의 출판인들은 한국이 복제물을 철저히 보호해 주는 대신 번역물은 보호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었다.
물론 이들의 합의가 양국의 정책결정을 구속하지는 않는다는 전제밑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출판물에 관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간의 합의였고, 특히 미국측은 저작권에 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를 대표한 인사들이었다는 점에서 저작권문제를 둘러싸 한미간의 마찰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번 협상결과는 이들 민간전문인들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의 흔적을 여지없이 뭉개버린 꼴이 되었다.
따라서 출판계일부에서는 이처럼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줄 바에는 차라리 하루속히 UCC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하는 편이 더 떳떳하고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UCC 파리수정조약에는 개도국올 위한 특혜조항이 있어 이들 국가가 외국의 저작물에 대해 임의의 허가를 얻지 못할 경우 교육적 목적등으로 번역·복제할때는 국내의 권한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있다.
물론 우리는 이 모든 문제가 한미무역마찰이라는 큰 물줄기에서 파생된 것이고, 또 여건조차 썩 좋지않은 상황에서 협상에 임했던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출판계가 언제까지 이런「과보호의 그늘」밑에서 존속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이 베일속에서 시한에 쫓기는 협상을 함으로써 국민의 지적·문화적 욕구충족의 원천인 출판부문만이 유독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는 사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만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당국이 이번 협상을 공개하여 앞으로라도 보다 슬기롭게 대처할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최근 일부 출판인들이 임시조치법 대신「저작권에 관한 한미쌍무협정」같은 것을 연구해 보자고 제안한 것은 정부쪽에서도 귀를 기울여 보아야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번역·복사되는 외국 저작물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나라의 것이 어림잡아 번역은 약60%, 복사는 약 30%나 된다고 한다.
어차피 미국의 개방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처지라면 미국 때문에 현안에 관계없는 제3국에까지 막대한 저작권료를 굳이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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