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누구도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인터넷 세상…착하게 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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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낯선 이름으로 도발적인 글이 올라오면 노련한 회원들의 반응은 대략 이렇다. 먼저 해당 회원의 프로필을 본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훑어보긴 하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보다 가입 날짜에 관심을 둔다. 가입한 지 오래된 회원이라면 일단 1단계는 통과다. 광고성 글을 올리거나 분란을 목적으로 들어온 뉴비(newbie·신참 가입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 회원이 쓴 다른 글을 살펴본다.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글이 보이면 성향이 좀 다르더라도 사바사(사람 나름이라는 뜻. 사람 by 사람, case by case를 빗대 만든 말)로 인정한다.

어떤 집단이든 그 안에서는 나름 평판이 이뤄진다. 인류가 오랫동안 사회를 이루고 살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얻은 지혜다. 아예 인간이 말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평판을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래서 구성원들에 대한 평판은 집단 안에서 대부분 서로 잘 알고 있다. ‘윗집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색시 마음 씀씀이가 예쁘다’ ‘옆집 아저씨가 벤처 투자로 큰돈을 벌더니 갈수록 거만해진다’ 하는 식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사람은 평판이 없으니 경계 대상이 된다. 마치 무술도장에 찾아온 불청객처럼. 그가 무도의 고수인지 방문판매원인지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참자들을 얕보고 괴롭히는 것은 인터넷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래된 회원들, 일명 ‘올드비’에 비해 뉴비들에겐 ‘닥치고 눈팅 삼 년’(잔말 말고 당분간 지켜보기나 하라는 뜻)이라는 인터넷 속담이 생길 정도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텃세가 잦아질 즈음이란 결국 신참자에 대한 정보가 파악되고 평판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때를 말한다.

늘 논쟁이 벌어지는 인터넷 뉴스난에서도 이런 문화는 비슷하다. 어떤 뉴스가 지나치게 편파적이라고 생각하면 네티즌들은 해당 기사의 ‘바이라인(기사 작성자 표시)’을 확인해 본다. 그리고 그 기사를 쓴 기자의 과거 다른 기사를 검색한다. 기자가 써온 기사 스타일과 성향을 뒷조사하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기자들은 종이 지면 시대의 기자 선배들에 비해 고달프다. 종이 지면 시대에는 신문의 제호가 평판의 대상이었지, 기자 개인에게까지 잣대를 들이민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관계형 인터넷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생긴 현상 중 하나는 평가 방식이 양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판매업소를 평가하고 음식을 먹으면 음식점을 평가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 손님은 택시기사가 친절했는지 평가하는데, 택시기사도 손님을 평가할 수 있다. 진상 손님은 아무리 택시를 호출해도 왜 반응이 없는지 자신은 모를 수 있다. 앞으로 악의적 블로거지(블로거+거지의 합성어)들에게 당한 맛집 주인들이 속을 썩히며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지 모른다.

에어비앤비(Airbnb) 같은 세계적인 숙박 중개 프로그램도 숙박서비스를 제공하고 나면 평가를 요청한다. 손님에게는 주인이 친절했는지, 숙소는 좋았는지 꽤 복잡하게 평가해 달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자기가 그런 평판을 다 쓰기 전에는 주인이 자기에 대해 쓴 평판을 볼 수 없다. 주인 역시 손님이 방을 깨끗하게 사용했는지, 협조적이었는지를 평가한다. 이런 쌍방 평가를 통해 손님들은 숙박업체 주인을 고르고 주인들은 손님을 고르는 판단 기준을 남긴다.

평가가 양방향으로 바뀌어 가면서 인터넷 평가의 신뢰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 평가가 정확한가, 옳은가를 떠나 이제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어느 조폭이 팔에 새긴 문신 문구처럼 ‘착하게 살자’가 최선인 세상이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