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연극

돌아갈 데가 없는 우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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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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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운
연극평론가?호서대 교수

연극의 현장인 대학로, 그 중심에는 30대가 있다. 두 개의 흐름이 뚜렷하다. 하나는 ‘권리장전’이라는 표어를 내세워 연극의 본연을 지키며, 자유로운 창작 의지를 굽히지 않는 저항연극이다. 또 다른 하나는 소란스럽지 않게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성찰하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고백연극이다. 이성권 작·연출의 ‘면회’(6월 24일~7월 3일, 동숭소극장)는 후자에 속한다.

극단 연미의 ‘면회’

고백연극의 경우, 어두운 극장에서 연극을 보다가 더러 잠이 들 때가 있다. 극장의 어둠은 관객의 졸음과 맞닿아 있다. 연극을 보는 일은 어둠과 졸음 사이에 옅은 길을 내고, 나아가는 일이다. ‘면회’를 보고 나서, 이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도 순간 잠이 들었다. 혼절하다시피, 줄에 매어놓은 갯배가 풀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로 흘러간 것 같았다. 배우들의 중얼거리는 말과 함께 숨죽여 가며 연극을 본 탓이다. 이 연극은 불안이 지배하는 연극인의 삶과 연극의 솔기를 꿰매 놓았다.

극단 연미의 ‘면회’는 이름을 부르고도, 눈을 뜨고 마주 보아도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의 연극이다. 제목대로 하면, 밖에 있는 사람이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지만, 실은 어디로든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래다. 이 연극은 억울하게 죽은 이와 그 죽음을 응시하는 살아남은 이들의 삶의 춘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면회’는 연극의 근원은 언제나 과거의 이야기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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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여자를 찾아가는 남자를 다룬 ‘면회’. 연극인의 고된 일상을 은유하는 듯하다. [사진 연미]

면회는 제한된 곳에 갇혀 있는 이를 만나는 일이고,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면회’의 프로그램에는 감옥에 갇힌, 종신형을 받은 여자를 만나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감옥은 죽음의 자리인 과거이면서, 삶의 이편 즉 이곳이기도 하다. 남자는 생을 마칠 때까지 그곳을 향하는 존재다. 현재인 남자가 죽은 여자를 만날수록 텅 비어 가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런 삶의 형국이 반복된다.

극 중에서 감방은 남자가 제 존재를 가두는 지금, 이곳이기도 하다. 남자가 면회하는 곳에 여자가 등장하지만, 실은 살아 있는 남자도 현실 속에 갇혀 있는 존재다. 남자가 말하기 위해 여자의 과거를 면회하는 것이다. 죽은 여자가 말을 하고 있지만, 실은 살아 있는 남자가 묻고 답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여자와 남자, 죽음과 삶의 경계는 사라진 셈이다. 삶의 종말은 이런 풍경일 것이다.

공연 내내 남자가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인물 혹은 연극처럼 찾아오지만,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울음만이 남는다. “인생에서 하나밖에 할 일이 없는” 연극에 매혹된 남자가 꽃처럼 시들어 간다. 공연의 끄트머리, 여자는 거울 속 영정사진으로 갇혀 있다. 그 앞에 생의 감옥에서 나올 수 없는, 천천히 죽어 가는 또 다른 존재인 남자가 앉아 있다. 감옥이 연극의 현장이고, 죽은 여자가 연극이라는 상상과 해석도 가능하다. 젊은 연극인 모두가 신음하면서 연극하고 산다. 바른 공공정책이 이들을 주목하고 지원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안치운 연극평론가·호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