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받을 권리와 상고허가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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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의 제한이라는 관점에서 그동안 논란이 거듭되었던 「상고허가제」가 최근 다시 법조계에 의해 문제로제기되고 있다.
이미 대한변협은 이의 폐지를 국회에 청원서롤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법무부는 행정과 가사에 관한 소송까지도 상고허가제를 확대 적용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의 규정에 따라 81년부터 실시중인 상고허가제는 원심판결에 불복하더라도 그것이 헌법에 위반했거나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 경우가 아니면 대법원의 사전허가를 받아야만 상고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같은 상고의 제한은 국민이면 누구라도 3심을 받을수 있도록 규정한 헌법상의 「재판받을 권리」인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는 취지가 재야법조계의 주장이다.
현재 상고허가제의 운용을 보면 소송당사자가 상고허가신청서를 제출하면 대법원판사가 기록을 검토한 후 가부를 결겅토록 되어있다.
상고허가를 받으면 비로소 상고이유서를 붙여 상고하게 되지만 상고허가신청이 기각되면 소송당사자들은 기각이유도 모른채 상고를 포기해야한다.
물론 대법원의 입장에도 일리는 있다. 우선 대법원판사는 12명뿐인데 처리해야할 사건이 첩첩이 쌓여있어 모든 사건을 선별없이 받아들여 일일이 판결문을 쓰는것도 무리일뿐더러 막상 심혈을 기울여 심리해야할 주요사건이 희생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재판이 부지하세월로 길어지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다.
더구나 상고허가를 기각할 경우라도 대법원판사가 기록심사없이 아무렇게나 기각하는 것은 아니어서 기각이유만 없을 뿐이고 사실상 3심제가 운영되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이유등으로 해서 상고허가제가 위헌이 아니라는 판례까지 남긴바 있다.
실지로 대법원판사는 직위에 비해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고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닌 고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다.
상고허가제가 재야법조계의 견해처럼 위헌인지, 아니면 위헌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의사가 온당한 것인지는 당장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뚜렷한 사실은 앞서 지적했듯이 모든 소송당사자들이 상고허가제가 거추장스럽고 불만스러울 뿐더러 당연한 권리가 보장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더우기 앞으로 행정 가사사건까지도 이 제도가 적용되게 된다면 어찌될것인가를 생각하면 여간 우려할 일이 아니다.
그것도 국가를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에 대한 소송당사자들의 생각이 일반사건과는 달리 불리하지않을까 하고 저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때 더욱 그러하다.
현재의 개정안은 앞으로 공청회등 여러 절차가 남아있어 손질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것이고 우선 국회에서 위헌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뤄줬으면 한다. 대법원판사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 상고허가제 실시가 불가피하다면 정원을 크게 늘리는 방안등도 얼마든지 강구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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