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근목사가 북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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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9월 고향방문단으로 평양에서 노모 서희영씨(82)를 극적으로 만나고 돌아온 황준근목사 (57·경기부천시 심곡1동663의13)가 한적이 서신왕래를 제의한 3일 북의 노모에게 혈육을 그리는 편지를 썼다.
어머니.
35년을 두고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뵙고 돌아온지도 벌써 70여일이 흘렀읍니다.
그새 계절이 바뀌어 서울엔 엊그제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습니다. 북쪽 평양 대동강변, 목단봉기슭에도 이눈은 내렸겠지요.
어머니, 추위에 건강은 어떠신지요.
『살아서 꼭 손자녀석들 얼굴이라도 봐야지』하시며 상한 손으로 제손을 그러쥐시고는 눈에 가득한 물을 참으시려다 그만 주르륵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들은 목이 멥니다.
어머니.
차를 타고 3시간이면 달려가 뵈올수 있는 길을 가지 못하고 이렇게 어머니가 받아보실 수도 없는 편지를 우는 아들의 마음을 어머니는 아시겠지요.
그들이 우리 모자의 이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다면 82세의 어머니와 57세의 아들이6백리 떨어진 곳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눈물을 흘리게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봅니다.
어머니.
35년만에 살아계신 어머녀의 모습을 봤을 때는 감격과 기쁨에 가슴이 터질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4층방에 그 어머니를 홀로 계시도록 남겨두고 떠나올때 감격과 기쁨은 슬픔과 아픔으로 변해 저의 가슴을 찔렀읍니다.
어머니.
1백년이 채 못되는 짧은생을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 허송하고 만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어머니.
지난 음력10월보름날은 저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온가족이 축복의 잔칫상 앞에 모여앉아 이자식의 축복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를 생각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읍니다.
어머니, 이번 적십자회담이 우리 모자는 물론 남북의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아픔의 눈물을 이제는 그만 씻어줄 것을 믿고 간절히 기구합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생전에 손자들을 만나보셔야지요.
1985년 12월 3일
아들 준근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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