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복원력 보여줄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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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가 이래도 되는가. 이래도 괜찮은가. 농성하고 단독통과 시키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정치가 돌아가도 괜찮고 그래도 나라와 국민에게 별 탈을 주지 않는가.
정말 답답하고 딱하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자기수준에서 이런파국은 어떡하든 막아보자고 중언복언해가면서 타협과대화와 점진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충고하고했지만 결국 이런사태가 오고말았다.
작금의 국회사태가 어디로 어떻게흘러 앞으로 우리정치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기만하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떨어진 정치의 신뢰를 어떻게 회븍하며, 이런 정국에대한 국민의 환멸을 뭘로 만회하여 다시 국민의 기대를 끌어모을것인가.
이런점은 정국을 주도하고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더 무겁게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한다. 야당을 제압하고 대야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문제는 둘째문제다. 야당에 싸움마다 이기고 작전마다 성공한다 하더라도 국민의신뢰, 국민의 마음을 끌어모으지 못하다면 전투마다 다 이기고도 전쟁에는 지는 결과가 올수도 있다.
재무위에서도 성공하고 본회의 전격통과도 작전으로서는 나무랄 점이없는지 모른다. 신속무비하게, 질풍같이 조감법과 예산안을 처리하고 농성하던 야당을 뭐쫓던 뭐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정치를 참 훌륭히 잘했다고 할것인가.
적십자회담을 위해 북한대표들은 넘어와 있고 감원과 부업과 불황으로 국민사기는 떨어져 있는 터에 여당이 이런 승리나 추구하고 있어서야되겠는가.
막판에 야당에 제의한 헌법연구특위안은 여당으로서도 어렵게 내놓은 용단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그러나 이 용단을 야당이 받지 않고타협이 일보직전에 실패하자 즉각 의원총회를 본회의로 돌변시켜 예산안을 단독통과시겨버렸다. 용단의 값어치가 어이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계파이해가 복잡한 야당사정을익히 알고있고, 다수 야당의원이 이 절충안을 환영하는것도 잘 알면서도 좀더 대화하고 타협하는 성의를 다하지 않은 점은 실로 유감이 아닐수없다.물론 예산처리의 시한은 절박하고 야당의원과의 물리적 충돌은 피해야겠다는 사정도 이해가 되지만 좀더 절충하고 수고했더라면 이런 파국은 막을수도 있지 않았겠나 하는애석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정치의 모양을 이꼴로 만든데는 야당도 공동책임을 져야한다.
개헌특위를 요구하고 예산안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소수당으로서 못할 일도 아니요, 날치기통과에 항의해 농성까지 벌인 것도 딱하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민정당이 막판에 극적으로헌법연구특위를 만들자는 타협안을 냈을때 그걸 왜 그처렴 쉽게 걷어차이런 결과를 불렀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꼭 개헌특위는 아니더라도 이름이 비슷한, 다소 완화된 형태의 기구라도 만들어원내 개헌논의의 길을 열자는것이 야당의 요구가 아니었던가. 헌법문제에 관한 여당의 그 철벽같은 완강함을 생각하면 이 타협안은 진지하게 긍정적으로 검토했어야 마땅했다.또 대부분의 야당의원들도 이런 인식을 갖고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이를 몇시간도 논의해 보지않고 거부하고 말았으니 평소 고창하던 「의회주의」 와「대화와 타협」은 다 어디로 보내고 말았는가.
더욱 해괴한 것은 여당 타협안을 대다수 의원들이 찬성했는데도 계파간의 이해다툼 때문에 거부했다고 하는 점이다.당의 목표나 의원들의의사는 아랑곳없이 이렇게 되면 ○○계에유리하게 되니 반대하고,저렇게 하면 당엔 불리하더라도 자파에유리하니까 추진한다는 식의정치가신민당안에 판을 치고 있으니 한심하다.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같은 당, 하나의 당이라고 할수 있는가.
국회의 이번 사태는 따지고보면여야 어느쪽도 원했던 결과는 아닌것 같다. 다들 피하고 싶지만 피할수있는 정치를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것이다.
원하면서도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한것은 정치력의 부족이요, 국민의 시선·국민의 기대를덜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개헌논의의 기구를 둘러싸고도 이런 파국을 초래하는 정치라면 장차개헌문제 자체를 두고는 어떤 양상이 벌어질것인가.
필요하고 불가피해서 했다고는 하지만 여당의 단독통과와 야당의 무한투쟁선언이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끼칠지 두렵다.사람이 법이나 도덕또는 체면·명예·염치 이런것 때문에 못하고 자제하는 일들이 얼마나많은데, 국민을 지도한다는 여야가 모두 벗어붙이고 알몸으로 「단독」이나 「무한」으로 치닫는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정치가 그런 나쁜 「모범」을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여당이 개헌특위 수정안은아직 유효하다는 입장이라고하니 여야는 이제라도 이 안을 중심으로다시 정치의 복원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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