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둔화와 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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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4분기의 경제실적을 두고 볼 때 여러 갈래의 평가가 가능하다. 우선 1년 반 동안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온 경제성장률이 3·4분기 들어 5·4%나마 반등세를 나타낸 점을 반길 수 있다.
미세하고 흡족치 못하지만 추세적 변동과정에서 새로운 변화의 기미를 나타낸 점올 강조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성장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국내경제는 답답한 「안개경제」에서 헤어나지 못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 첫 째는 5·4% 성장의 주도부문이 제조업 아닌 농수산과 정부 건설부문인 점이 지적될 수 있다. 3·4분기 중 농림·어업부문은 지난해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14·7%나 늘어난 점, 건설부문에서 정부건설이 크게 늘어난 것이 결과적으로는 5·4%성장을 뒷받침한 셈이다.
이같은 성장패턴은 안정성이나 지속성에서 큰 허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경기 전망에 너무 크게 참고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장의 본류인 제조업과 관련한 여러 지표들이 지금으로서는 더 큰 관심을 모아야 한다. 제조업은 3·9%성장에 그쳐 전 분기보다는 약간 나아졌으나 여전히 지난해 같은 기간 수준에는 크게 뒤진다.
가장 큰 걱정은 이번 분기에도 기계설비투자가 계속 줄어든 점이다.
지난 84년 초의 26·8%에서 계속 줄어온 기계설비투자는 이번 분기에도 1·3%에 머물러 가장 심각한 부진상을 나타내고 있다.
제조업이 이처럼 부진하고 설비투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지금의 경기침체가 빠른 시일 안에 변화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6% 성장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남은 4·4분기 중10%의 실질성장이 실현돼야 하고 연률 5%에 머무르기 위해서도 앞으로 7% 이상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농업작황이 이미 전년 수준을 밑도는 상황에서 민간투자마저 움직이지 않는다면 4·4분기 7% 성장도 어려울지 모른다. 실제로 전경련이 조사한 연말 경기 전망에서도 부진이 예고되고 있다.
올해 경제가 5%선을 밑도는 성장에 그친다면 당면한 실업문제는 더욱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5% 성장은 곧 12만 명 이상의 신규 실업을 의미할 것이며 내년의 저 성장에 따른 실업까지 누적될 경우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경제운영의 초점은 당연히 실업 대응으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현재의 재정·금융·산업정책은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재정은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직적이고 표면상 균형재정을 내걸고 있어 적기 대응력이 훨씬 떨어진다. 과감한 예산 수정으로 실업 홍수를 위한 주택 건설 등 재정투자· 융자사업을 확대,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에서는 지금의 비생산적 구제 금융을 지양하고 기업의 생산적 투자를 실효 있게 지원하도록 개편돼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금리를 포함한 금융조건을 완화하여 침체된 민간 투자를 고무하는 일이 긴요하다. 그러나 민간투자에 관한 한 불투명한 투자환경을 정비하고 예측 가능한 시장 전망을 세울 수 있게 제반여건을 조성해 주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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