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호모사피엔스의 탄생부터 인류 지배한 노동·성·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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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성, 권력-무엇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왔는가
윌리 톰슨 지음
우진하 옮김, 문학사상
532쪽, 2만5000원

“우리는 이제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다.” 누가 한 말일까. 어느 영국 보수당 소속 총리, 어느 역사학자가 한 말이라는 설이 있다. 실명으로는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가 거론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사라진 게 아니라 흡수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독립적인 사상 체계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영감을 받아 탄생한 소련·동구권 체제가 망한지 오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만만치 않은 생명력을 과시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요즘처럼 ‘큰 문제’로 고심하는 시대에는 마르크스주의 같은 ‘거대한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쓴 『노동, 성, 권력』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심층역사(deep history)·거대역사(big history)의 추세를 이어간다. 저자는 노동·섹스·권력이라는 변수 3개로 호모사피엔스의 탄생부터 오늘까지 다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를 연상시킨다.

노동·성·권력이라는 조합은 어떤 역사를 낳았는가. 저자 톰슨에게 역사란 우선적으로 강제 노동의 역사다. 여성혐오(misogyny)의 역사이기도 하다. 1990년 사회주의역사학회를 설립한 저자는 유물론자이지만 종교의 역할도 중시한다. 종교가 강한 이유는 뭘까. 저자에 따르면 노동·성·권력과 끈끈하게 연결된 종교는 수구·혁명 세력 모두에게 도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수가 소수의 말에 복종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가 『노동, 성, 권력』을 통해 대답하려는 시급한 질문이다.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야만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애초에 저자의 집필 동기는 “모든 문명의 기록은 또한 야만의 기록이다”라는 독일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의 말에 대해 ‘격하게’ 동의했기 때문이다. 한물간 사회주의가 답을 줄 수 있을까. 저자는 ‘변명’을 제시한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성공에 필요한 시간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주의에 희망을 건다. 지금이야 말로 야만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선택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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