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국민이 기뻐 어쩔 줄 몰랐다.|월드컵축구 한일격전 현장에 서서…서동훈<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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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축구 이겼다고 좀 심하게 열광하다가 그 기분으로 소주를 마셨더니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가 축구공에 되게 맞은 것같이 얼얼하다. 32년만에 겨우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한심하게 생각해야 할지 감격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섰는데, 아무려나 우리가 그 동안 너무 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월드컵이라는 것이 참 어렵구나 싶고, 특히 일본을 이겼다고 표현하기 보다 「그냥 작살을 냈다」고 말하면서 감격해 지나칠 것은 없겠다.
소를 일시킬 때 보면 입에다가 새끼로 짠 그물모자같은 입마개를 씌워놓는다. 일하다가 풀 뜯겠다고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곧잘 이 그물 입마개를 훔쳐내어 그 속에 지푸라기를 잔뜩 다져 넣고 입구를 꿰매어 축구공으로 사용했다. 바깥 타작마당에서 동네아이들 모아놓고 그 짚 축구공을 차다가 어른들한테 들켜서 혼깨나 나곤 했지만, 축구라는 것이 보통으로 재미나는 노릇이 아니어서 소 입마개 다 망쳐놓았다고 야단맞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 축구가 왜 국민 모두를 그렇게 열광시켰는가?「공이 그물에 한번 부딪친 장면」 그 장면 하나가 나로 하여금 소주 두 병을 단숨에 마시게 하고 또 다른 술을 좀더 마시게 했다. 우리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하게 됐다해서 내게 직접적인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 팔자라도 고친 듯이 벌떡 일어나서 뛰고 손바닥을 치고 고함을 지르고 했는가?
그것은 「순수한 기쁨」이라고 할 것이다. 별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기쁜 마음, 스포츠는 그런 순수한 기쁨을 인간에게 주는 것이다. 본래 순수한 힘은 그 위력이 강하다. 온 국민들을 일제히 기뻐 날뛰게 만드는 그 힘이 보통 힘인가?
건장한 젊은이들이 그 넓은 운동장에서 야생의 순록처럼 힘차게 뛰고 차고 부딪치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재주를 보여주다가 어렵고 어렵게 한 골을 차 넣을 때, 그때 폭발하는 「순수의 힘」을 대항할 힘은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 속에 그런 에너지를 자꾸 축적시키는 것이 바로 응집된 국력의 배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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