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버스에서 가장 먼저 도망친 운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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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남부 후난(湖南)성 이장(宜章)현에서 26일 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에서 불이 나 승객 55명 가운데 3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 출입문이 어떤 이유에선지 열리지 않아 미처 탈출하지 못한 승객의 인명피해가 컸다.

이날 사고는 내리막길을 주행하던 버스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가로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며 일어났다. 연료통에서 기름이 누출되면서 불길이 번져 차량은 30여분만에 전소됐다.

소식을 접한 중국인들이 더욱 분개하고 있는 것은 "운전기사가 불타는 버스를 팽개치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증언이 인터넷을 타고 퍼졌기 때문이다. 신화사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앞좌석에 타고 있던 승객 황 모는 이렇게 증언했다. "사고 직후 무슨 일인지 잘 모르지만, 운전기사가 버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버스는 스스로 운전석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중국의 대형 버스는 운전석과 일반 승객석이 높낮이 차이가 나고 분리되어 있다.) 나는 그 뒤 소화기를 집어들고 창문을 깨고 빠져 나왔다."

때마침 사고 순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 기사가 이를 발견하고 구조에 나섰다. 그는 돌맹이로 창문을 깨부수고 승객 6명을 그 틈으로 빼내 구조했다. 구조된 한 승객은 운전기사가 고속도로 변 숲속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올해 41세로 버스 운전 경력 20여년인 기사는 현재 중국 경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2014년 한국의 세월호 사건 당시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이 사건에 대해 "운전기사가 승객을 태우는 순간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의무를 지게 된다"며 "전문 기능을 갖춘 운전기사가 가장 먼저 도망쳤다니 놀랄뿐이다"는 댓글을 올리는 등 분노를 참지 않았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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