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성<서울대교수·사회학>왜 법과-경제과에만 몰리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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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입시철이 다가오고 있다. 입시때만 되면 수험생들은 어느 학료에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걱정들이다. 몇 점정도의 실력이면 어느 학교의 어느요가 합격선 이리라 하고 비교도 해본다. 그리고 대부분 점수에 따라 학과를 결정해 버린다
우리들은 매년 법과나 경제학료의 합격선이 높음을 보고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사회상을 나타내주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대학이 한때 계열별 모집을 한 일이있는데 그것이 실패한 것은 모두 법과나 경제과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의 대세를 꺾을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법두나 경제료에만 몰리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권력과 금력의 매력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인 것이다. 법과에 가야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경제과에 가야만 재화를 누릴 수 있는 보장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돈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메마른 사회이고 거친 사회인데도 똑똑한 젊은이들이 자진해 권력과 금력을 찾을수 있는 곳으로 몰려든다.
우수한 인재들이 한 곳으로만 몰리는 사회는 전제적 사회를 의미한다. 권력의 서열에 따라, 혹은 재력의 서열에 따라 사람들이 순서지어 진다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괴롭고 재미없는 생활을 일생동안 지내야 한다. 그런데도 법과나 경제과만이 선량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독점적권세를 오래도록 누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깨질때 사회는 민주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란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을 주게 마련이다. 이 보상이 하나의 척도에 의해 주어지면 공평한 보상을 배분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에게 권력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도 없을 것이고 금력을 불평없이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배분할 수도 없다. 그러니 여러가지 보상의 기준을 사회는 가져야한다. 보상기준의 다원화야 말로 사회적 안정의 관건인 것이다.
보상기준이 다원화된다는 것은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긍지를 갖고 일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농촌에 가면 농민들은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 말로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어쩔수 없이 농사짓는다고 신세 타령을 한다. 젊은이들은 농츠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기회만 있으면 도시로 뛰쳐나오고 그것도 대도시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보상은 대도시, 그것도 서울에만 집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사람도 결국 만족하고 있지 않다 .장사해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도 가업을 자식대대로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또 그 자녀들도 부모의 직업을 계승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런 자녀일수록 관권에 대한 매력을 더 느끼고 있는 것 같고 부모의 직업을 천시하기까지 한다. 이른바 직업의식이 없다. 그러니 양심있는 사업가가 나올리 없다.
이것은 잘못된 현실이다. 돈을벌어야겠다, 츨세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목적이고 그것만을 위해서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고있는 것이 잘못인 것이다. 현대인은 인생을 즐겁게 살기를 원한다. 인생을 즐겁게 산다는 것은 삶의 맛이 풍요해야지 권력 있고 돈 있다고 해서 저절로 오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권력있고 돈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알고 있다. 이것이 잘못인 것이다. 권력있고 돈 있어도 안되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직업서열이라는 것이 있다. 대체로 의사 변호사의 서열이 높고 문인이나 예술가의 서열은 낮다. 이것은 평균적인 사회통념으로 측정되는 것이지만 이 통념대로만 되고 있다면 그것은 재미없는 세상이 되고만다. 공무원사회엔 말단 공무원이 있다. 공무원이 모두 장관이 되고 국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만년말단공무원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 장관이고 국장이고 관심없고 내가 하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아니면 이 일이 안된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말단공무원의 사기를 여지없이 꺾어버리고 만다.
우리 사회는 심리적 보상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남을 구속할 수 있는 물리적 보상만을 중요시하고 있고 인간적 만족과 같은 보상은 아예 무시해 버린다. 권력있고 돈 있는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멋있게 사는 사람, 성실히 사는 사람,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돈 잘버는 의사나 변호사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인술을 베푸는 양심적인 의사를 존경하고, 피해받는 백성의 편에 서는 비타산적인 변호사를 존경해야 하다.
우리는 남들이 알아주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사회가 권력만 알아주고 돈만 알아주니까 그것으로만 몰린다. 농사짓는 사람을 안 알아주고 장사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으니까 그 일을 자손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는다. 농사짓는 일에도, 장사하는 일에도 사회가 존경을 보낼 수 있는 풍토가 되어야 겠다.
이 자리에서 제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람들이 어떠한 일에 종사하든 그 일을 줄곧 열심히 정진해가면 정점에 가서는 모두 상당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보상체계를 확립하라는 것이다.
열심히 농사짓고 성공하면 대통령 부럽지 않은 보람을 느낄수 있어야하고, 열심히 장사하는 사람도 국회의원 못지 않은 인정을 받아야 하고, 성공한문인이나 예술가는 장관 이상으로 존경받도록 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보람있게 일할 수 있고 일에 재미를 붙일수가 있다.
대학에 있는 많은 학과에 골고루 우수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학과간의 합격선이 뒤죽박죽이 되는 날이면 보상기준이 다원화된 시기라고 보아도 좋을 것 이다. 그리고 부모들도 어느 학과에 가든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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