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도움보다 역기능 많아|각종 협회·조합통폐합 방침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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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19일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이 발표한 「사업자단체 기능합리화 방안」은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라는 명분아래 실제로는 기업에 군림하면서 부당한 간섭과 과중한 회비진수 등으로 기업부담을 가중시키고 가격카르델 등 담합행위로 공정거래질서를 해치고 있는 각종 조합 ·협회·연합회 등에 철퇴를 가하겠다는 취지다.
사업자단체란 철강협회· 제지공업연합회· 각종 수출조합· 약사회· 공인회계사회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업종의 사업자들이 업계의 이익보호 증진을 위해 만든 단체들이다.
이 단체들은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정부의 정책에 반영시킨다든가 경영· 기술지도, 필요한 자료와 정보의 수집제공, 원자재의 공동구입 등 적극적인 기능을 통해 기업의 성장과 국민경제발전에 긴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정부도 사업자단체의 설립을 특별법 등으로 의무화시키는 등 적극 육성해왔으며 각종 인허가· 확인· 수출입추천· 기금관리 등의 업무를 대행시키는 등 사업자단체를 이용도 하고있다.
현재 전국에는 신고된 사업자단체만 8백52개에 달하며 그 중 60·8%인 5백18개 단체는 특별법 및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의해 설립된 단체들이다.
이 처럼 중요한 기금을 담당해왔고 정부자신이 그 필요성을 인정했던 사업자단체에 정부 스스로가 메스를 가하게 된 것은 그 동안 적극기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역기능의 폐해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에 왔다고 본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 불공정거래라는 시각에서 사업자단체와 그 회원간의 관계를 조명하게된 때문이다.
공정거래실이 지적한 사업자단체의 문제점은▲단체조직상의 합리성 결여▲단체가입강제와 신규가입제한으로 업계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것▲불합리한 회비징수로 업계불만 증가▲각종 경쟁제한적 관행 등 불공정행위의 상존▲정부위임업무의 불합리한 집행으로 비능률성 증대 등 5개 유형이다.
단체조직상 합리성이 없다는 것은 유명무실한 단체가 회비만을 징수하거나 각종 단체가 난립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중복가입을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점등을 지적한 것이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개 업체가 평균 5개 단체에 중복가입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평균 가입단체는 1l개다. 그 중에는 최고 34개 단체에 가입하고있는 사례도 있었다.
종래의 관념에서 본다면 기업이 몇 개의 단체에 가입하든 정부가 문제삼을 것이 못된다. 이것을 새삼스럽게 문제점으로 보는 것은 유명무실한 단체에의 가입이나 중복가입이 기업의 의사에 반해 부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에서 법령· 정관에 의해 가입이 강제되었거나 반대로 기존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신규가입을 제한하는 행위, 회비를 과다하게 징수하는 행위 등도 문제 삼고 있다.
공정거래실은 특히 법령에 의해 가입이 강제되어있거나 사업자 단체가 정부의 업무를 위임받은 것을 이용하여 가입강제, 부당한 회비징수 등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중시하고 관계법령을 고쳐서라도 이 같은 사례를 없애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보이고있다.
공정거래실이 상공회의소를 통해 1천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51·8%에 달하는 기업이 사업자단체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주요한 불만요인으로 가입자의 의사와 무관한 일방적 운영(31%), 행정기관의 부속기관처럼 기업 위에 군림한다 (28%)는 점이 부각되고 있어 이번 시정조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불만의 요인이 정부가 기업을 효율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가입을 강제하거나 정부의 기능을 사업자 단체에 맡김으로써 비롯됐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실이 칼은 빼 들었으나 관계부처가 어디까지 칼을 휘두르는데 동조할 것인지 의문이다.
또 단체의 통폐합· 흡수합병 등으로 존립이 위태롭게 될 때 거기서 오는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공정거래실은 수출조합의 수출추천업무를 생산자단체로 이관하여 업무의 중복· 비효율성을 시정하는 등 정부위탁업무에도 대폭 손질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 경우 직접 통폐합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도 기존조합은 존립기반을 잃고 만다.
회비징수에 대해서도 매상액의 몇%를 징수하던 것을 부가가치세 기준으로 바꾸겠다하나 공정거래실이 회비징수 문제에까지 관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이론도 있을 수 있다.
이번 사업자단체 기능합리화 조치는 그 집행까지에는 숱한 곡절을 겪을 것으로 봐야한다.<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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