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겐 자기편을 낮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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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보세요,○○○씨댁입니까?』
어느 회사간부가 직원이 무단결근을 해서 직접 전화를 걸었더란다. 젊은 부인이 나왔다.
『○○○씨가 오늘 결근을 해서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요.』
『네에, 과장님이세요? 아빠께서 어제부터 감기가 드셔서 누워 계시는데 깨워드릴까요?』
그 과장은 여기까지 듣고 민망해서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어느 글에서 읽은 실화다.
언젠가 필자는 호칭 얘기에서 대화의 상대에 따라 자기 가족에게 경대를 해서 좋을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다고 했었다. 이 경우는 안 되는 쪽이다. 남편의 상사에게 어떻게 자기 남편을『이러시고, 저러시고』 경어를 바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몰라서 저지르는 부수다. 다음은 어린 학생들의 용어.
『너, 담임이 빨리 직원실로 오시래』
『선생님이 빨리 오시라고 해서 왔어요.』
그래도 이건 좀 애교가 있다.
『아빠께서 생선회(회)를 잘 잡수셔서….』
TV화면이 나온 꽃 같은 주부의 말. 마이크를 잡은 아나운서가 열살은 더 위로 보이는데, 시청자가 민망해진다. 이런 여성치고 둘이서는 『자기! 이거 좋아해?』하고 반말을 쓰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 경우 『애들 아버지(아빠)가 생선회를 좋아해서…』이 정도가 점잖지 않을까.
풍속이 다르니 절대 그대로 따르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과 나를 구별하는 경손의 자세는 참고할 만해서 소개한다.
일본의 경우 말단사원이라 할지라도 고객에게 자기 사장을 가리킬 때 『○○』라고 씨자도 안 붙이고 성만을 부른다. 『○○, 지금 시내에 나가고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가 남에게 자기 남편을 지칭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교수부인이 남편의 제자에게까지 자기 남편을 3인칭으로 『아무개』라 부르는데는 너무 한다 싶었다. 그러나 부부간은 정반대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처에게『너』라고 하는 풍습이 살아있다.
이것은 우리쪽이 훨씬 점잖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해라체」는 기첩이나 비첩 아니면 쓰지 않았다. 『애기』의 쓰임도 문제다.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애기』란 어린애기외에 남의 자녀의 높인 말이다. 대화에서는 물론 안 듣는 곳에서도 『○○댁의 애기들』,『따님』,『아드님』,『자제분』이라 함이 관례고 반대로 자기자녀들은 『저희(우리) 애들』 ,『어린애 (유·유아,국교생)』,『아들애』,『딸애』가 무난하다.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들놈』,『우리 계집애』했지만, 지금은 의미의 격하로 안 쓰이고 대신 『아들내미』,『딸내미』라 하는 신조어가 일부에서 쓰이고 있다. 김용숙(숙명여대 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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