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대결의 인간 삶 "만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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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셰익스피어」작품으로 그 화려한 막을 연 뒤 창작극만을 공연했던 호암아트홀이 16일부터 다시 『오셀로』로서 고전비극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사대비극 중 가장 인간적이고 일상적이며, 현대적인 성격비극이다. 왜냐하면 『오셀로』야 말로 질투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사랑과 미움의 가정비극이기 때문이다. 음모에서 발각으로 가는 고전적 정형의 이 작품의 선과 악의 세 주요인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셀로」(김성원), 「이아고」(장용), 「데스데모나」(금보라)다.
흑인과 백인귀족과의 결혼에서부터 이미 질시와 악이 끼여들 소지를 만든 『오셀로』는 맹목적 격정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키는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의 핵심은 간악한 「이아고」와 우둔하지만 선한 「오셀로」의 대결이다. 결국 악에의해서 선의 정신질서는 붕괴되어 간다. 인간사회의 불가사의한 평형의 파괴를 「셰익스피어」는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즉 「이아고」의 철저하게 계산된 음모로 인해서 자제심과 존엄을 미덕으로 삼던 거인「오셀로」가 마침내 야수로 타락하여 아내를 교살하는 과정은 관객을 질식시킬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다. 사실 수없이 반복 공연되는 「셰익스피어」연출은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룡기의 정석적 해석으로서 「셰익스피어」의 높은 문학성과 무대위에서의 예술성을 만끽케 해주었다.
이번 연출의 긍정적 측면은 우선 캐스팅에서 나타났다. 즉 김성원의 이미지가 「오셀로」 에 맞아 떨어졌고 장용의 「이아고」도 독특한 개성을 풍겼다. 대체로 「이아고」는 음산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이미지의 배우들이 맡아왔는데 이번에는 평범하면서도 유들유들한 장용이 색다른 「이아고」를 창출했다. 거기다가 그들을 뒷받침하는 스타급 배우들 금보라·윤승원 (캐시오)·정상철 (몬타노)·김길호 (공작)·연운경·박웅등-이 포진해서 무대는 매우 활기에 찾고 화려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셰익스피어」가 구축해놓은 인간의 애증, 분노와 용서, 잔혹과 연민, 슬픔과 기쁨, 공포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꾀를 부리지 않은 건실한 연출과 배우들의 정확한 발성, 그리고 화려한 의상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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