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과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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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년도 노벨평화상을 받게된 국제의사기구(IPPNW)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의사들의 반핵기구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특히 올해는 「레이건」 미대통령·교황「요한·바오로」2세 등을 포함한 세계적 유명인사 60명과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 등 39개의 단체가 후보에 올라 각축전을 벌였다.
1980년에 발족한 이 무명의 신생기구는 노벨상위원회가 밝혔듯이 핵전쟁이 인류에 미칠 가공할 참상을 의학적 측면에서 일반에 널리 알림으로써 반핵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다. 지금까지의 반핵운동이 정치적 혹은 도덕적 차원에서 전개돼온데 비해 이 기구는 동서양진영 의사들이 그들의 전문적 지식을 뒷받침으로 하여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핵전쟁의 피해를 막아보려고 한데 그 의의가 있다.
이들이 핵전쟁을 「불치의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일단 핵전쟁이 발생할 경우 의수들이 「인류의 생명 및 건강의 보존」이란 직업적 소명을 수행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핵질환의 예방」만이 그 불치의 병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발력 13킬로톤의 초기 우란폭탄은 25만5천명의 도시인구 중 7만5천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0만명을 부상시켰으며 90%의 건물을 파괴했다.
이때 히로시마에 있었던 45개의 병원 중에서 단 3개의 병원만이 괴멸을 면했으며, 1백50명의 의사 중에서 부상자를 치료할 수 있었던 의사는 겨우 30명 뿐이었다. 또 1천7백80명의 간호원 중에서는 불과 1백26명만이 살아남아 부상자를 돌봐주었다.
신뢰할만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만약 80년대에 이같은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약 2억의 인구가 즉사하게 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외상, 화상, 좌상, 골절, 그리고 내장의 천공, 팔다리의 탄화 등 부상과 정신착난 또는 그밖의 방사선 해독으로 죽어가게 되므로 모든 의료시설을 다 동원한다 해도 10분의 1도 치료할 수 없게 된다.
그뿐 아니라 핵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의료시스팀은 와해되고 수송·통신시설, 전력, 병원의 침대, X선과 기타 진단장치, 혈액약제 등이 모자라 설령 의사나 간호원이 있다 하더라도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전문적 데이터에 의한 반핵운동은 다른 어느 기구의 운동보다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수상 소감을 피력한 「버너드·라운」박사의 경고는 모두 귀담아 들어야할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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