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부활동, 신뢰가 생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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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우리는 아름답고 따뜻한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다. KBS와 아름다운 재단에 거액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나신 강태원 할아버지나 서성환 태평양화학 회장 등이 그 소식의 주인공들이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평생 모은 돈을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게 쓰고 가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소식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기부문화가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1980년대 말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후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민들의 기부활동은 ARS 기부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고, 요즘은 기업의 기부뿐만 아니라 기업가 개인의 기부활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기부를 유도하는 비영리조직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웃돕기성금을 관장하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가 투명하고 책임 있는 모금과 배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1% 나눔 운동과 아름다운 가게 사업을 펼치는 아름다운 재단이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해 기여하는 등 각종 비영리단체들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아울러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선 아직 우리에게 몇 가지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일반 시민들의 기부의 생활화다.

2002년 아름다운 재단이 실시한 전국 조사에 따르면 우리 시민들의 연간 기부총액 평균은 5만1천7백원이지만 시민들의 52%가 전혀 기부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시민 10명 중 9명이 지난 2년 동안 기부 경험을 갖고 있고, 이들은 자신의 기부활동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헌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비교는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성숙을 위해 기부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의 저변 확대와 시민 인식의 변화가 매우 필요함을 알려 준다. 내 가족을 초월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까지 관심을 넓혀 보다 적극적으로 기부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축적한 부를 자녀와 친족에게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도 환원해 사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게 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모범적 행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무엇보다 요망된다.

미국에서 자선적 기부문화 발전의 근원은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자선 운동(Charity Society Movement)이었다.

또 1889년 '부(Wealth)'라는 글을 통해 부자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스스로 1억2천5백만달러를 기부해 자선 재단을 설립한 카네기와 같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선구자적이고 모범적인 활동도 이를 정착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바로 이런 모범이 제2, 제3의 카네기를 만들어 냈고,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의 기부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를 축적한 시민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기부가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계속 확산할 때,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역할과 기여를 보다 가치있게 평가하고 존중하는 풍토도 함께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기부를 유도해내는 민간 비영리조직들의 창의적 모금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월급.인세.끼.전문성 등 시민의 다양한 자원에 대한 1% 나눔 운동을 전개하는 아름다운 재단처럼 투명하면서도 책임 있게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해 내는 창의적 활동들은 시민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선적 기부 결정을 유도하는 데 있어 기부 대상이 되는 비영리조직이 보여주는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부 유도의 주체가 되는 조직들이 투명함과 책임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지 못하거나 신뢰를 형성해 내지 못한다면 기부활동의 활성화와 기부문화의 성숙은 기대할 수도 없다.

강희철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