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서로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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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앙일보는 지난9월25일「창간20주년기념 국민생활의식조사」의 결과를 보도한바 있다. 그 내용가운데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가장 호감을 갖고있는 나라로서 일본이 미국·스위스에 이어 세번째로 지목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8.7%)
한편 이 보도에 때를 맞추기나 하듯 일본 총리부는 일본인의 의식조사에 관한 통계를 발표했다.
일본인은 한국을 호감 갖는 나라로서 미국·중공에 이어 세번째 나라로 여기고 있으며 해방이후 처음으로 친근 감정을 갖는 사람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간이나마 웃돌았다. (45.5% 대 45.2%)
그러나 아직 두 나라 국민은 공통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서로를 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한일 두 나라 국민은 상대를 좋아하기도 하면서 싫어하기도 하는 미묘한 감정을 지닌 채 다른 어느 나라를 대하는 것보다도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원래 일본인은 힘센 나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숭배하는 경향이 있으며 근대화이후 아시아를 무시하는 탈아론을 부르짖고 서구의 뒤만을 쫓아왔다.
이제야 겨우 경제대국의 자리를 굳히면서 서서히 자기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스스로의 문화의 뿌리를 한국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일본인의 이러한 태도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인 스스로에게 있다. 수많은 한국인 학자·문화인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또 경제면에서도 일본을 위협할 경쟁상대로 부각되었으며 실제로 88년 올림픽은 서울이 일본 명고옥과 경쟁하여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비참한 6·25전쟁을 치르고, 국토가 두토막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불사조처럼 일어선 한국인에게 두려움과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한국젊은이는 36년 간의 고통을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한국의 여러 주요대학에서는 일어·일문학과를 설립했다. 그 실상은 단순히 일본이 경제대국이어서 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들과의 접촉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가까운 곳, 관찰하기 쉬운 것을 살펴 얻은 사실을 보다 복잡한 문제에 적용하는 일은 과학적 인식이기도 하다.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을 연구하는 일이 곧 스스로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나가서는 범 인류적인 문제를 옳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번에 발표된 통계자료는 한일 두 나라 젊은이들이 세계를 한 시야에 놓고 살아야할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겉보기에 한일 두 민족은 혼동할 만큼 비슷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 사이에 가로놓인「다름」을 무시함으로써「가깝고도 먼나라」란 미묘한 말이 실감나게 된다. 처음, 민족을 형성하던 먼 옛날에 품었던 기본적인 가치관, 즉 조형(조형)부터가 다르며 그 사이에 겪은 역사체험 또한 판이하다. 마치 갓난아이가 하나의 개성을 갖고 태어나 교육과 체험을 통해 인격을 다듬어내는 것과 같이 민족은 조형을 역사에 여과시키면서 오늘날의 민족성을 구축한다.
우리는 건국신화에 상징되어 있는 것처럼 외래의 천손족과 토착의 웅녀족의 평화공존으로 민족을 형성하였다. 강한 평등사상과 혈연의식으로 된 조형이 민족보존을 다해왔으나 때로는 역사상황에 어울리지 못해 자학할 때도 있었다.
한편 일본은 건국신화에 나타나고 있는바와 같이 외래민족이 토착민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건국이후 최근까지 엄한 군사체제를 유지해왔다. 자신이 소속한 조직과 그 우두머리에게만 충실하면 좋다는 신조로 살아왔다. 이 민족성이 그들을 경제대국의 위치에 올려놓았으나 한편 타민족에게는 수많은 과오를 범하게 하였다. 국제간의 우호는 서로의 개성을 이해하여 상대나라의 장단점을 알고 대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개성이 없는 인간이 결코 바람직스러운 인간상이 아니라면 개성이 없는 민족문화 또한 가치를 지닐 수 없다. 민족문화는 독자적인 특색을 지닌채 문화에 기여할 만큼 승화될때 국제간의 진실한 이해와 우호를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차원높은 이해와 친선을 위해서 우리는 일본인이 높은 곳에서 넓게 눈을 열어 그들의 조직에 대하는 성실성을 전 인류를 향해 발휘해줄 것을 바란다. 아울러 우리 또한 전통적인 평등의식을 승화하여 밖으로는 안전존중과 평등의 모범이 되고 안으로는 건전한 민주정신으로 통일된 나라를 이루어 세계문화에 기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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