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단체) 미 아성 깨고 "금" 명중 구자청 등 신예파이팅 덕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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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회첫날 바람이 약간 강하게 불자 미국선수들이 당황하는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회마지막날 비바람이 불어 우승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읍니다.』(박경래 남자대표팀 코치)
『저는 원래 비바람이 불면 성적이 좋아집니다. 처음부터 여자선수들에 기대를 건 모양이지만 우리들은 경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을 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 있었읍니다』(구자청선수)
제3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의 14연패를 저지하고 정상에 오른 한국남자양궁의 개가는 어떤 점에선 비바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끈기의 추격, 악조건에 강한 정신력이 이 영광을 안겨준 것이다.
특히 구자청이 막판까지 추격을 거듭하던 일본의「마쓰시따」(송하)를 14점차로 따돌리고 더블종합 2천5백92점으로「매킨니」에 이어 은메달을 따냄으로써 강한 승부근성을 보여주었다.
한국남자단체 우승은 미처 기대하지 못한 대성과. 난공불락을 장담해온 미국의 아성을 깨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치는 높이 평가될만하다. 미소 등 세계양궁지도자들이 한결같이 감탄하는 것도 국제경기 경험이 충분하지 못한 나이 어린 한국선수들이 어떻게 그런 호기록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자양궁 영광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남자선수들은 이번 기회에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무서운 투지를 보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비해 개인·단체서 우승을 기대했던 여자부의 침몰은 상대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첫날부터 외롭게 선두를 달린 김진호(김진호)의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것이고 이로 인해 막판에 추격을 허용, 밀리고 말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부조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큰 승부에 강했던 LA올림픽우승자 서향순(서향순·이화여대)은 자신의 최고기록에 l백l2점이나 미달, 11위에 그쳤다.
결국 한국은 김진호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 과중한 부담을 안겨줬던 까닭에 단체전패배 (은메달)를 가져왔고 반대로 남자부에선 구자청 이외에 전인수(전인수)가 꾸준한 기록진전으로 마지막엔 미국의「페이스」를 제치고 종합4위까지 오름으로써 구를 뒷받침해 주었다.
남자단체 2위 미국과는 17점의 차. 여자단체 1위 소련과의 간격은 93점. 그러나 막판역전승한 한국남자는 자만할 때가 아니며 여자선수들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번 세계대회는 88올림픽을 위한 하나의 전초무대. 따라서 3년 후 한국남녀가 함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이번 대회는 좋은 교훈을 준 셈이다.

<김인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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