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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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때아닌 장마가 스산함을 실어올듯 하던 지난몇주동안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웃의 따뜻한 온정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설렘을 느꼈다.
어릴 적부터 그리 튼튼하지 못한 건강 때문에 마음마저 움츠러들어 나는 평소 대인관계가 별로 넓지 못했다. 자연히 이웃과의 대화도 거의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 과천으로 이사 온지 1년이 지났지만 자진해서 옆집에라도 놀러간적이 없다. 어쩌다 시장 길에 이웃과 마주치면 독례와 미소 정도였다. 그러면 내가 몇 주전부터 건강관계로 병원출입을 하게되자 부득이 아이 둘을 앞집에 부탁하여 보살핌을 받지 않을수없었다.
저녁 무렵 병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은 엄마없는 동안 이웃 아줌마들이 자신들에게 무얼 해줬는지를 주워대기 바쁘다. 102호 아줌마는 아이스크림을 주셨고, 202호 아줌마는 초컬릿을 주셨고, 앞동의 철이엄마는 점심 때 라면을 끓여주셨고 하는 식으로.
낮동안 돌봐준 아줌마들에게 고마움이야 이루 말할수 없었으나 그 동안은 내 병에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 한마디 못하고 병원만 들락거렸다.
대충 고삐가 잡히고 정확한 진단이 내려 집에서 약물치료를 받게되자 맨 먼저 앞집에서 밤을 듬뿍 넣은 약식을 해왔다. 그리고 수시로 정갈한 반찬 접시가 우리 집으로 날아들었다.
그 다음은 102호에서 떡볶이와 비빔국수 등을 해주었고, 101호 지은엄마는 내 나이보다 훨씬 아래인데도 만삭의 몸으로 오늘 또 약식을 해 왔다.
뒤이어 4층 지연엄마는 찹쌀 화전에 참기름을 듬뿍 발라 구워 뜨거울 때 먹으라며 가루가 하얗게 묻은 손으로 가져왔다.
오늘은 두집 음식을 한꺼번에 받아 놓고 보니 단순히 받는 즐거움이기에 앞서 그 이상의 뭔가가 가슴에 젖어온다.
요즈음은 만든 음식을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것도 보기 어려운데 일부러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든 그 마음씨에 나는 무엇으로 보답한단 말인가.
그토록 살살한 인상으로 자신의 시간만을 아끼던 나에게 이런 인정이 부어지다니…. 부끄러웠다.
이 가을 나는 이웃을 오가며 새로운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경기도시흥군과천주공아파트211동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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