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리의 유엔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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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백59개국을 회원국으로 하고있는 유엔은 우리의 민족해방과 역사를 같이해온 보편적인 세계기구다.
그 유엔이 창립40주년을 맞아 광복40주년을 맞은 남북한의 정부대표를 총회에 초청, 연설케 했다.
우리는 국무총리가, 평양에선 부주석이 10월하순 유엔총회에 참석, 연설하기로 됐다.
유엔은 발족직후부터 한반도문제에 깊이 관여해 왔다.
47년 제2차총회때는 정치위가 9개국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 한반도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 감독케 했으나 소련군당국의 입북거부로 통일정부수립은 실패했다.
48년2월 유엔소총회는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를 하도록 결정하여 남한에서 5·10총선이 실시되어 그해 8월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됐다.
다음달 9월에는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정점으로하는 공산당정권이 세워졌다.
이래서 한반도는 미소 점령군의 주둔지를 기초로 국토와 민족이 분단, 오늘에 이르렀다.
제3차총회 (48년)는 남한의 「대한민국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 우리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양극화한 냉전체제에서 미국중심의 서방세계에 주도되던 당시의 유엔은 그후 71년까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후견역을 맡아왔다.
동란때의 유엔군 파견, 유엔사와 언커크의 설치도 그런 상황에서 가능했다.
당시 북한은 여러차례 남북한동시가입을 요구하고 한반도문제가 토의될때는 당사자원칙에 따라 북한도 유엔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합법정부가 못된다는 이유로 거부돼 왔다.
물론 한국도 단독가입안을 여러차례 제출했으나 동시가입을 내세우는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모두 좌절됐다.
한국에 대한 유엔의 후견역은 71년 제26차총회를 계기로 끝났다.
70년대의 데탕트는 미·중공의 화해, 중공의 유엔가입, 닉슨 독트린등을 가져오고 제3세계 비동맹국이 유엔에 대거 진출하게되자 유엔에서 탈한(De-Korea)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언커크의 해체와 유엔사의 현상변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후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불상정을 시도했다. 반대로 북한은 종래의 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유엔진출을 기도했다.
73년 한국은 종래 추구하던 단독가입이 불가능해지자 동시가입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북한은 그것이 「두개의 한국」을 고정화하고 분단을 영구화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동시가입을 반대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정부대표가 유엔에 나가 연설케됐다는 점에서 우리와 세계의 관심은 크다.
이번 노신영총리의 유엔연설은 한반도의 유엔관계를 다시 활성화하고, 이것을 남북문제 발전으로 연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북한은 최근들어 대외정책을 유연화하고 있어 유엔정책의 변화에도 기대를 갖게 한다.
지금 유엔은 문호를 개방,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계속 남북한동시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만 동의한다면 동시가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북한이 동시가입에 호응하여 동·서독처럼 같이 유엔에 들어가 세계와 함께 인류평화에 기여하면서 그속에서 민족문제의 해결을 추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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