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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착각’에서 벗어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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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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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논설위원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식의 옛 표현 중에 “착각(錯覺)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이 있다. 착각이 자유라 하더라도 착각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스스로 자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올해는 여름이 빨리 왔다. 정치인들은 속속 대권 출마를 선언하거나 암시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주기에서는 대권 경쟁 시즌이 유달리 빨리 개막됐다. 아마도 그들은 대통령이 될 자신이 있을 것이며, 되고 나면 잘할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자신감 넘치는 판단이 결국에는 망상으로 판명되더라도 말이다. 지금 당장은.

“미국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백악관 잔디 깎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는 법은 알지만 최고 권력자로서 권력을 쓰는 법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치야말로 차가운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기예(技藝)다. 정치에는 착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인 못지않게 국민·유권자도 정치적인 착각을 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다. 능력으로 보나 도덕성 면에서 보나 신통치 않은 정치인이 대통령의 꿈을 꾸는 이유는 그를 지지하는 국민·유권자가 있기 때문이다. 1%건, 수십%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지도자와 추종자가 서로서로 착각을 부추기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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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댓글이 담고 있는 민심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우선 ‘모두 다 나쁘고 무능력한 놈들이다’ ‘누가 돼도 똑같다’는 식의 실소와 조소를 날리는 정치 허무주의적인 댓글인은 그 숫자가 ‘다행히’ 많지 않다.(‘댓글쟁이’라는 낮춰보려는 표현은 쓰지 말자.) 그들은 정치에 아직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둘째, 다수 댓글인들은 ‘우리 편’이 집권을 유지하거나 정권을 교체하면 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착각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나 댓글인들이 포함된 국민·유권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실제와 다르게’가 아니라 ‘실제와 같게’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은 심리적으로 영원히 실제에 접근할 수 없다.(일부 철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실제라는 것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실제에 근접하는 한 가지 방략으로 ‘팩트’에 입각한 의사결정과 판단이 제시된다. 하지만 ‘팩트 중심주의’에도 함정이 있다.

첫째, 극단적인 경우에는 ‘저쪽은 악마, 이쪽은 천사’로 보는 편향성이 있다. 둘째, 팩트 자체가 제한적이다. 셋째, 팩트는 정보 자체의 부정확성을 뛰어넘기 힘들다. 그래서 한 인물에 대한 팩트는 오만 가지가 있다. 100% 팩트만 가지고 그를 성웅으로 만들 수도, 천하에 나쁜 놈으로도 만들 수 있다.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나라의 국민은 집단 체험, 집단 학습을 한다.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한다. 이런 것들이다. ‘정치인 출신은 정치를 잘할 것이다’ ‘행정 경험이 있으면 관료들을 잘 다룰 것이다’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으면 경제대통령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우리 편이 집권하면 몸을 사리던 기업들이 미친 듯이 투자를 시작해 일자리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이미 많은 가설이 거짓으로 판명 났다. 경험은 교훈을 낳는다. 착각이 끼어들면 교훈 대신 신화가 탄생한다. 경험이야말로 착각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의심해야 잘못된 신념을 깰 수 있다.

정치적인 착각(political illusion)은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착각의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인물로는 프랑스 철학자·사회학자 자크 엘륄(1912~94)이 있다. 43권의 책을 집필한 엘륄은 운동권이 사랑한 보수주의자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우리는 정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고가 정치에 복사되면, 국가 밖에서는 정의도 행복도 풍요도 없다는 관념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그런 관념 속에서는 모든 것이 정치화(politicization)된다. 작은 정부를 진정으로 바라는 정파는 없다. 공약을 어떻게 했건 공무원 숫자는 늘어나게 돼 있다. 공무원이 늘면 규제도 는다. 정치 참여, 특히 투표를 독려하지만 정치는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정치화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탈정치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치·국가·정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정부 주도로 한 세대만에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경험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 중독에 취약하다. 정치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삼킨다. 강간도 살인도 정치적인 문제다. 어쩌면 우리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어쩌고 하는 정치 환경이 아니라 ‘국가의 상대적 절대성’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정치학의 전제는 “모든 것은 정치적이지만 정치가 모든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정치가 아닌 것에 눈을 돌릴 때다.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할 때다.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정부에 기대려고 하는 기업들을 탈정치화시켜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희망을 접는다면 무엇이 남을까. 개인과 식구다. 또 남는 것은, 아니 필요한 것은 윤리와 도덕이다. 대다수 국민이 올바르게 살면, 감시와 질서 유지에 필요한 국가 인력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정치가 어떻게 되건 나만 올바르게 잘 살면 된다’는 사람이 많아져야 정치의 문제가 해결된다.

김 환 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