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쁠럭 불가담 운동’ 다시 꺼낸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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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쁠럭 불가담 운동을 강화해 발전시켜야 합니다.”

미·중 격돌 틈새 활용하려는 의도
외교 고립 돌파 위한 전략적 카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6~9일 7차 당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이렇게 연설했을 때, 정부 당국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1960년대 태동해 냉전시대에 절정을 이룬 ‘쁠럭 불가담’, 즉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NAM)을 김 위원장이 지금 시점에 다시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NAM은 아프리카·동남아 등 제3세계를 중심으로 “강대국에 대항하며 제국주의 등 모든 형태의 외국 침략과 패권에 저항한다”는 목표로 창립됐다. 북한도 주요 회원국이다.

통일부는 당대회 분석 자료에서 “‘쁠럭 불가담 운동’은 김일성 주석이 1980년 6차 당 대회 때 강조한 것”이라며 “김정은의 세계관이 3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시대적 사고를 보여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쁠럭 불가담 운동’은 단순한 ‘김일성 따라하기’나 ‘구시대적 사고’를 떠나 김정은식의 외교코드의 핵심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대회 이후 국내 정치의 밑그림을 완성한 김정은이 대외 관계로 지평을 넓히면서 자기식의 외교 코드로 쁠럭 불가담 운동을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가 읽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동북아연구실장은 “김정은은 ‘쁠럭 불가담 운동’을 통해 외교적 고립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이 북한이라는 전략적 카드를 놓고 격돌하는 틈새에서 북한이 끝까지 붙잡은 끈이 ‘쁠럭 불가담 운동’이며, 힘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쁠럭 불가담 운동’을 무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쁠럭 불가담 운동이 북한에겐 마지막 외교적 동아줄이라는 것이다.

당대회 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적도기니 방문→김영철 당 부위원장의 쿠바 방문→이수용 당 부위원장의 중국(NAM 참관국) 방문→최태복 당 부위원장의 베트남·라오스 방문 등 일련의 외교적 행보를 볼 때 더욱 그렇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쁠럭 불가담’이라는 틀을 활용해 공세적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며 “김정은 외교에서 핵심 코드로 자리잡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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