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총검술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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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적 제9차회담(27∼28일· 평양) 이 아무런 진전없이 끝났다. 이것은 북한이 정치선전을 앞세우고 회의진행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단순한 학생들의 무용체조」라 하여 우리측에 보여준 것은 김일성 우상화와 정치적 훈련을 받고 동원된 대중들의 광적인 함성, 그리고 청소년들의 총검술이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을 시켜 휘두른 총검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실로 한심스럽고 통탄할 일이다.
우리 대표단이 차마 볼 수가 없어 30분만에 퇴장하자 북한은 매스컴을 총동원하여 『오만무례한 행위』이며 『참을 수 없는 모욕』이고 『회담분위기를 흐리려는 고의적인 방해행위』라고 비난했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북적대표단은 28일의 제2일째 회의를 정상대로 개최, 비공개로 열기로한 약속을 깨고 공개리에 우리대표단의 퇴장을 비난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공식사과를 강박하고 실질문제토의에도 용하지 않았다.
우리측이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실질문제 토의에 들어가자고 요구했으나 북적의 이종률단장은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류를 재고치 않을 수 없고 더 이상의 대화도 필요없다』는 등 폭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들이 과연 대화를 하려는 것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한적의 인내심 있는 노력으로 적십자회담이 결렬되거나 고향· 예술교환계획이 백지화되지 않고 10차회담 일자를 정할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주관하면서 결코 실수라고 볼 수 없는 몇가지 위약을 저질렀다.
보도진들에겐 통신편의를 제대로 제공치 않았다. 이것은 8차회담때 우리측이 베푼것과 비교할때 명백한 상호주의 원칙위반이다.
문제된 27일 하오의 학생체조도 원래는 그 장소가 옥내로 결정됐었으나 몇 차례의 변경을 거쳐 옥외로 바뀌면서 내용이 총검술로 둔갑됐다.
9차회담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행동에서 우리는 몇가지 분석적 결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북한은 회담을 치러나가는데 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감당키 어려운 것 같다. 84명의 손님을 맞아들이고 회의를 치르는 비용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더구나 북한은 스스로 지상낙원이라 선전해 왔다. 거기에 걸맞는 환경정리 비용도 지금의 북한 경제력으로는 힘겨운 일이다.
이런 단계에서 우리 회담대표단이나 민간방문단을 맞아들일 자신과 용기가 북한에는 없을 것이다.
평양에는 남북대화를 반대하는 강경파가 아직도 강력한 것 같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저지른 일련의 약속위반은 그들 보수파의 작용으로 보아야 한다.
더구나 회담을 빨리 끝내고 실천사업으로 들어가자고 촉구하면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제시한 9차회의에서의 한적의 의욕적인 도전은 평양의 강경파를 자극하고 온건파를 궁지에 몰리게 했을 가능성도 예상된다.
어쨌든 이번에 북한이 보여준 무법자적 작태는 대외적으로는 민족의 수치이며 대내적으로는 회담을 방해하는 반민족적·비신사적 행위였다. 새삼 우리는 북한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섬뜩한 체험을 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헤어질 수 없는 숙명적인 동족관계에 있다. 북한이 좀더 성숙되고 자각된 모습으로 나와서 다가오는 추석방문단 교류와 제10차 서울회담이 차질없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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