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미래의 밥상] 유기농은 미래 세대를 위한 식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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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진은 유기농 채소와 과일에 관한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기농 작물과 일반 작물 간에 영양학적 차이가 전혀 없을뿐더러 더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건강에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 역시 거의 없다고도 했다. 유기농 우유 역시 비타민이나 단백질·지방 등 그 어떤 영양적 측면에서도 우수한 부분이 확인되지 않았다. 스탠퍼드대 연구는 지금까지 나온 유기농 관련 논문 1000여 편을 망라해 분석한 결과로 세계적인 의학 전문지에 소개돼 의학계와 식품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일반 작물과 영양 차이 없지만
생태 파괴 악순환 막는 작은 실천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가족의 건강식단을 챙기고 아이의 아토피를 걱정하는 엄마들에게는 특히 충격적인 소식일 텐데 말이다. 많게는 두 배 더 높은 가격에 구매하는 유기농 음식이 영양에 도움이 안 된다니.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유기농을 밥상 위에 올리고 있는 것일까.

미국 농무부는 유기농을 종(種)다양성, 생물 순환, 토양 내 생물 활동 등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환경보호 관리 체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해 농약이나 항생제 같은 인위적 물질을 쓰지 않는 농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 밥상의 영양과 건강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도대체 유기농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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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Liebig)가 질소 비료를 발견한 뒤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비료 대량 생산이 이뤄졌다. 1940년대에는 농약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류는 유사 이래 시달려 온 기아에서 벗어났다. 풍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불어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났다. 지구 환경이 빠르게 파괴되기 시작했다.

현대적 농법은 우리 환경을 병들게 하고 있다. 대량 생산을 위한 과도한 합성 비료와 농약 사용은 생태계 다양성을 파괴한다. 이는 지기(地氣)의 훼손으로 이어져 농업 생산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줄어든 생산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을 써야만 한다. 악순환이다. 그 끝은 작물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죽은 땅, 황무지다.

미래 세대도 과연 우리와 같은 풍요로움에서 살 수 있을까. 우리 세대가 혹시 풍요로움 속에서 사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는 않을까. 유기농은 이를 막기 위한 지금 세대의 약속이다. 유기농 식재료가 우리 몸에 좋으니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유기농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유기농은 내 몸 하나 좋으려고 하는 일차원적 지침이 아니다. 우리 삶의 터전을 보전하고 지속적인 농업 생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농법이다. 유기농 식재료를 밥상에 올리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상의 실천이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우리를 괴롭히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과도한 질소 비료 사용에서 기인한 대기 중 암모니아 농도’라고 발표했다. 유기농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오늘 저녁 밥상엔 유기농 상추에 유기농 고춧가루를 팍팍 뿌린 상추 겉절이를 올려 보자. 우리 자녀 세대도 풍요로움 속에 살 수 있기를 기원하며.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 비즈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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