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도 빚은 무서워…알리바바 지분 9조원 어치 팔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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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역시 빚은 무서웠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결단했다. 금쪽같은 알리바바 지분 일부를 처분하기로 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소프트뱅크는 “회사의 현찰을 늘리고 빚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알리바바 지분 일부를 팔기로 했다”고 1일 발표했다. 회사가 발표한 매각 대금은 79억 달러(약 9조4800억원)이다.

거액 들인 미 이통사 ‘돈 먹는 하마’
소프트뱅크 빚 12조 엔으로 늘어
알리바바 투자 이익 2000배 추정
아직 남은 빚 많아 지분 더 팔 수도

손정의가 알리바바 지분을 팔기는 16년 만이다. 그는 2000년 2000만 달러를 투자한 이후 계속 알리바바 주식을 늘려왔다. 그가 보유한 주식수는 7억9770만 주까지 불어났다. 2014년 8월 알리바바의 상장 직전 지분율은 34.4%에 이르렀다.

다만 알리바바 상장으로 지분율은 32%로 낮아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손정의가 지분 79억 달러어치를 정리하면 지분율은 28%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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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WSJ·블룸버그

손정의가 얼마에 알리바바 주식을 사들였는지(평균 매입가격)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월가 사람들은 손정의가 2000년 2000만 달러를 투자할 때를 기준으로 적어도 2000배 정도 이익을 봤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톰슨로이터가 이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손정의의 수익률은 미국 벤처투자 역사에서도 아주 예외적”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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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WSJ·블룸버그

이제 알리바바 1대 주주가 본격적으로 지분 처분에 들어간 것일까. 소프트뱅크는 이날 성명서에서 “소프트뱅크와 알리바바는 2000년 이후 16년 동안 아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며 “앞으로도 이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모를 일이다. 손정의의 이날 지분 매각은 상황에 떠밀려 이뤄졌다. 블룸버그는 “소프트뱅크 부채가 2013년 하반기 이후 가파르게 불어났다”고 전했다. 약 2조 엔(약 22조원)에서 올 4월엔 11조9000억 엔(약 128조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화근은 2013년 미국 이동통신회사 스프린트 인수였다. WSJ는 “손정의가 220억 달러를 들여 스프린트를 샀지만 2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스프린트의 실적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손정의가 알리바바 지분을 판 돈으로 빚을 갚아도 부채가 눈에 띄게 줄지는 않을 듯하다. 부채 11조9000억 엔 가운데 8700억 엔 정도만 갚을 수 있어서다. 상황에 따라서는 알리바바 지분을 더 팔아야 할 수도 있다. 손정의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는 알리바바 지분을 애지중지한다.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이번 지분매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손정의는 전체 매각분 79억 달러 가운데 50억 달러어치는 금융 테크닉을 최대한 동원해 소유권을 3년 정도 유지하며 매각 효과를 내는 방식을 택했다. 먼저 자신이 초대한 기관 투자가의 돈을 받아 펀드를 설립한다. 여기에 알리바바 주식 50억 달러어치를 넘겨준다.

대신 펀드에 참여한 기관 투자가는 분기별로 소프트뱅크가 주는 현금(이자 성격)을 받는다. 알리바바 주식은 3년 뒤엔 넘겨받는다. 주식수는 그때 알리바바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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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WSJ·블룸버그

또 블룸버그는 “펀드에 참여한 기관 투자가들은 나중에 알리바바 주식 10억 달러어치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매수선택권)를 덤으로 받는다”고 전했다.

나머지 29억 달러 어치는 알리바바(20억 달러), 알리바바 고위 임원펀드(4억 달러), 주요 국부펀드(5억 달러)에 배정됐다. 손정의가 내놓은 알리바바 주식 한 주도 시중에 풀리지 않는 셈이다.

알리바바는 자사주 24억 달러 어치를 매입하게 됐다. 마윈(馬雲) 회장과 파트너(고위 임원) 등이 보유한 지분율이 10%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은 기업사냥 공격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마윈은 이날 성명에서 “알리바바가 자사주를 사들이는 일은 회사 자금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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