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포식품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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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배차(배추)가 꽃같이 이쁘지요?』
날마다 배추를 2백통 이상씩 다듬어 소금에 절이는데 1시간도 채 안걸린다는 「김치아줌마」김순희씨(58)-그는 32년간 자신의 생계를 이어준 배추가 마냥 대견스럽다는 표정이다.남편과 사별한 김씨가 l.4후퇴때 함흥에서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월남한 이래 김치·깻잎조림·무우장아찌등을 머리에 이고 날라다 파는 반찬장수에서 20여년만에 식품회사(마포식품) 사장이 되기까지 김치는 가장 인기품목이라는 것.
여느 농부의 손보다 거칠고 굵은 손가락마디와 배추·무우를 다듬다 칼에 벤 수많은 상처자국들은 「쳐다보기조차 아까운」 귀한 아들을 키우느라 김씨가 치러온 고생살이를 대변하는 인생계급장. 그럼에도 김씨의 주름진 얼굴을 환히 밝히는 웃음이 곧장 터지는 것은 매사에 감사하는 습관이 몸에 뱄기 때문인 듯.
소금·고춧가루·간장등에 손을 담그고 살다시피 해야하므로 늘 쓰리고 아프던 김씨의 손을 「구해준」고무장갑이 생긴게 고맙단다.
마음씨 착한 수양딸과 사위를 얻어 함께 일하게 된 것도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활짝 웃는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김씨 못지않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들이 더할 나위 없는 효자인데다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는 두 손자가 뛰노는 모습을 보며 살수 있다는 사실. 공대를 나와 현재 대기업의 간부로 일하는 아들이 12년전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드리기 의해 직접 설계해서 만들었다는 「버무리는 기계」는 김씨의 큰 자랑거리다. 양념을 고루 섞는 이 기계는 다섯사람의 일을 거뜬히 해낸다며 김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내 좀 깔끔합네』고향을 떠나온지 30여년이 지났어도 함경도 사투리가 여전한 김씨는 자신의 성공(스스로는 좀 나아졌을 뿐이라지만)을 철저한 위생관념과 좋은 재료를 넉넉히 사용하는 방법 때문이라고 설명. 남들이 반찬그룻을 시장바닥에 늘어놓고 팔때 김씨는 사과궤짝 위에 올려놓고 판다든지, 도매상에서 받아온 무우말랭이 장아찌도 그대로 팔지않고 참기름·깨소금·파·간장을 넣어 새로 무쳐서 팔았다는 이야기다.
경기도 벽제읍내에 있는 김씨의 절임공장에서 배추 외에도 깻잎·고추·마늘등 1년동안 필요한 밑반찬 재료들을 제철에 사서 한꺼번에 절여두었다가 서울 마포시장에 있는 공장에서 그날그날 필요한 분량을 무쳐 공급하는데 식품조림및 가공허가권만도 22개. 이처럼 어엿한 식품회사 사장이 된 지금도 김씨는 반찬장수 시절이나 다름없이 부지런하다.
늦어도 새벽3시면 일어나 손수 김치나 장아찌등을 버무려 배달시키고 재료를 사서 다듬어 절인뒤 밤10시가 지나서야 잠드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
김씨의 손맛을 찾는 고객이 있는 한 그의 일손은 계속 바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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