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외채상환 1년간 동결선언|채권국·국제금융시장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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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경제의 꾸준한 회복, 이에 따른 채무국들의 경제성장과 큰 폭의 무역흑자, 철저한 긴축재정등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던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의 외채문제는 「알란·가르시아」신임 페루 대통령(36)의 원리금상환 동결선언으로 다시 채권국과 채권은행을 비롯, 국제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고있다.
지난달 28일 취임한 「가르시아」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앞으로 1년 동안 1백 36억달러에 달하는 외채원리금은 페루 수출수익의 10%이내에서 지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또 그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국제통화기금 (IMF)의 간섭을 일체 배제하고 채권은행들과 직접 외채상환문제를 교섭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가르시아」대통령의 선언에 가장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은 미국의 민간채권은행들. 만약 페루의 선례가 중남미 전체로 파급되면 외채문제로 국제금융시장이 또 한번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IMF가 미국 행정부의 대외 경제노선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기때문에 페루의 이같은 선언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고나섰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페루의 이같은 움직임이 전혀 평지풍파만은 아니었다. 중남미 외채대국들도 이미 그들의 상환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최근 쿠바의 「카스트로」가 주창하고있는 외채의 정치적 해결, 즉 외채를 갚지 말자는 주장은 중남미의 많은 나라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었다.
지난 달 30일 쿠바의 아바나에서는 중남미 정치인·경제인·경제학자 등 5백여명이 이 지역의 외채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이른바 「대륙회의」라고 불리는 이번 회의가 「카스트로」의 주장의 선전장이 될 것으로 외교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월 취임한 「사르네이」 브라질대통령도 『브라질의 외채를 브라질 국민의 굶주림으로 갚지는 않겠다』고 말했고 아르헨티나의 「알폰신 대통령도 『중남미의 외채는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가 없다. 첫째 그것은 부도덕한 일이며, 둘째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중남미제국은 모든 외채상환을 동결하기 위해 뭉쳐야한다』고 틈만 나면 주장해왔다.
외채에 대한 중남미국가들의 이러한 시각은 현재의 외채위기를 근본적으로 군사독재의 잔재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의 민주화추세와 중남미에서 점증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 등이 어우러져 외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데는 많은 나라들이 공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84년 말 현재 전 세계 외채 약 9천억달러 가운데 약 3천 6백억달러가 중남미제국에 몰려있으며 특히 이른바 카르타헤나그룹에 속하는 11개국에 중남미 외채의 약 80%가 몰려있다.
주요 국들을 살펴보면 ▲브라질 1천 20억달러 ▲멕시코 9백 60억달러 ▲아르헨티나 4백 84억달러 ▲베네쉘라 3백 50억달러 ▲칠레 2백억달러 ▲페루 1백 36억달러 순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들 중남미제국의 외채문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조짐은 여러 곳에서 잘 드러났었다. 이 지역 16대외채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난 81년의 5백 30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백 20억달러로 감소했으며 지난해 이 지역에서 무역흑자도 3백 76억달러를 기록, 지난해 이 지역에서 갚아야할 외채원금과 이자 3백 72억달러를 초과하는 액수였다.
그러나 이 지역 대부분의 국가들도 주로 국제무역을 통해 이루어진 이러한 경제회복이 높은 실업률, 살인적인 인플레 (이 지역 평균 2백% 이상), 그리고 빈부의 격차 등을 해소해 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중남미제국의 이러한 외채현황에 대해 뱃심좋게 도전장을 낸 「가르시아」대통령의 이번 선언이 미칠 영향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간「외채상환거부」를 주창해온 「카스트로」의 주장이 일부 호응을 받고있고 「레이건」 행정부의 대 중남미 강경 외교로 서서히 일기 시작하는 반미의 물결등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두고 볼일이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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