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軍內 성폭력 근절 장치 마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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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병이 자살한 데 이어 사병을 상습 성추행한 대대장이 구속돼 충격을 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10명 중 1명이 군(軍)내에서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군내 성추행이 고질적임을 말해준다.

성추행은 엄청난 인간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인권문제다. 더군다나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 문화에서 절대적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추행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피해사실을 고발하고 시정할 아무런 창구도 없어 자살과 정신과 질환 등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지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군 부대에서는 치부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꺼려 가능한 한 이를 무마하거나 감추려 하고, 심지어 국방부는 군내 성폭력의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여성부는 동성(同性) 간의 성폭력은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성격상 상시적인 교육.감시를 하기는 어렵다고 하니 군내 성폭력은 사각(死角)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병사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갖고 입대했다. 그런데 그 대가가 본인의 자유의지를 짓밟힌 채 치욕을 느끼며 동성애까지 강요당하고도 항변할 방법조차 없는 것이라면 이를 방치한 정부는 어떤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군내 성폭력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우선 군내 성폭력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또 국방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전담 부처를 따로 지정하고,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예방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상사의 강요에 대해 저항하기 힘든 군 특유의 문화를 감안해 피해 사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성폭력 고충전담창구를 설치하고, 근무지 변경 조치 등 보복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