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해운업 구조조정, 법정관리는 피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기사 이미지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더 이상 회생 가망이 없는 사양산업이라면 산업을 축소하고 다른 산업으로 고용 등을 이동시키는 구조조정이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2013년 영국 선사인 로이즈 레지스터와 스트래스클라이드 대학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운산업은 2030년까지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할 산업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운산업은 장기적으로는 유망하지만 현재 불황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개별 해운기업의 부실이라기보다는 해운산업의 위기로 봐야 한다. 세계경제가 호전되면 가장 먼저 호황을 맞을 유망한 글로벌 산업인 것이다. 따라서 특정 기업의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불황에 견뎌낼 수 있도록 유도해나가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부채를 조기에 회수하는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고, 시황이 개선될 때까지 지원해서 선가가 회복되면 그때 부채를 정상적으로 회수할 수도 있다.

세계적인 해운경제학자인 영국의 마틴 스토포드 박사는 그의 저서 『해운경제학』에서 “선박의 성장잠재력이 있는 불황기에 채무불이행이 발생해 자금압박을 받은 선사가 선박을 매각하는 것은 투매와 같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해운업의 특성상 해운경기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고 선가도 회복되기 때문에 그때 매각해야 제대로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외항 정기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무가 동결되면서 국내·외 주 채무자들은 법정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세계 여러 터미널의 사용료 미지급금, 벙커유 미지급금 등을 갖고 있는 많은 채권자들은 자국항만에서 유치권을 행사하고 배가 들어오면 압류한다. 이 경우 정시 운항을 생명으로 하는 정기선사엔 심각한 영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해운 동맹체인 얼라이언스에서도 퇴출되고 결국 파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전 세계 해운서비스를 하던 조양상선도 파산선고를 받아 한국의 국제 정기선 브랜드 한 개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경험도 있다. 가장 아까운 것은 몇십 년간 쌓아 온 해외네트워크와 글로벌 브랜드 등 무형 자산을 한꺼번에 잃는다는 점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우 전 세계 영업을 위해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에 투자한 금액만 각각 3조~5조원이다. 두 회사 중 한 개라도 사라진다면 해외 화주와 전 세계 네트워크가 일시에 사라지는 국부 유출 결과를 초래한다.

2개 외항 해운사를 통합시키든, 아니면 지주회사로 운영하든 해운사를 파산시키는 법정관리만은 피해야 한다. 물론 해운경기 침체에서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이라 해도 해운사 모그룹과 경영층이 좀 더 효율적인 경영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쪽박까지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말 어려운 퍼즐이겠지만, 무역·물류·항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정책인 만큼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