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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도전정신 가다듬고 약점 보완할 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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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조짐은 벌써 예고되었으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가 침몰한 다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습관 때문일까. 슬럼프로 빠져가는 우리 경제의 상황을 바둑을 통해서 생각해 본다.

프로기사의 슬럼프 극복법 … 침체 빠진 한국 경제에도 적용할 만

슬럼프는 터널과 같다: 바둑에서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바닥을 치는 것을 ‘슬럼프’라고 한다. 프로기사들은 신들린 듯 승승장구하다가 하향세로 접어들어 패배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 시기는 승부사의 불경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슬럼프는 바둑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경기에서도 볼 수 있다. 작년에 독일 분데스리가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내 환호를 받던 손흥민 선수가 요즘은 거의 골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팬들은 아쉬움을 많이 느끼는데 손흥민 선수 본인은 마음이 몹시 괴로울 것이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계의 최고봉에 올랐던 전설적 기사 조치훈 9단은 슬럼프를 터널에 비유했다. 어둡고 괴로운 시기라는 뜻이다. 언젠가는 터널을 벗어나겠지만 터널 속에 있는 동안은 암흑과도 같은 어두운 시기를 보내야 한다. 암흑기에 머무는 동안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불황의 늪을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이세돌 9단도 슬럼프를 경험했다. 이 9단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2013년이 극심한 슬럼프였다. 아내와 딸이 캐나다로 떠나면서 기러기 아빠가 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결혼하고 가족이 생겼는데 갑자기 혼자가 되니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렸다.”

2013년은 세계 최강 한국 바둑이 중국에 모든 타이틀을 빼앗겨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한 충격적인 한 해였다. 한국 바둑계의 대표 이세돌 9단이 슬럼프에 빠져 페이스를 찾지 못할 때 한국 바둑이 크게 추락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대표 기업이 슬럼프에 빠질 때 한국 경제의 위상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둑에서 슬럼프를 겪는 시기에는 기분도 우울하고 이상하게 일도 잘 깨진다. 좋은 바둑인데도 왠지 패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잘 두다가도 패착을 두어 패배를 당하는 수가 많다. 운도 잘 따라주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다. 슬럼프의 중요한 특징은 불황의 시기가 잠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 지속된다는 것이다. 슬럼프에 빠졌다가 빨리 벗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긴 시간 동안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 경제의 슬럼프: 우리나라의 경제는 호황기를 지나 슬럼프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조선·해운산업이 ‘말뫼의 눈물’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가 부채는 물론 개인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청년들의 실업률이 늘어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전반적인 경제동향을 보면 우리가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바둑에서처럼 괴롭고 어두운 슬럼프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다’는 말이 일상화 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침체 원인은 외부와 내부 양쪽에 있다. 외적으로 보면 글로벌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중국 기업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올라선 것과 관련이 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올라온 많은 기업이 기술력이나 자금력으로 우리 기업을 능가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의 도약은 바둑계와 흡사한 면이 있다. 바둑 분야에서도 10여 년 전에는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중국도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약적인 성장을 한 중국이 정상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게 되니 우리 바둑의 국제적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경제 침체의 내부 원인은 부채, 일자리, 고령화 등 구조적인 요인이 많다. 부채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인구의 고령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을 외쳐대지만 청년들의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요인이 얽혀서 암흑과도 같은 슬럼프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단의 대책이나 위기극복의 묘수가 나오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현재 우리가 슬럼프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인식을 진지하게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렵다고 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씀씀이를 줄이지 않는다. 국가도 세금을 아껴 빚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슬럼프 탈출할 대책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건져내는 방법은 간단치 않다. 그리고 물에 깊숙이 빠진 다음에 건져내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침몰한 상태의 어려움은 그리스나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답은 회복불능의 상황이 되기 전에 손을 쓰는 것이다. 점점 기울어가는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하여 부담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을 아껴서 국가의 부채를 줄이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수도권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그 지역이 안고 있는 수천 억원의 빚을 갚았다고 한다. 이처럼 세금을 아껴 국가 부채를 줄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들도 과도한 해외 여행 등 씀씀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노력만으로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 참고로 바둑에서 슬럼프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알아보자. 슬럼프에 빠졌을 때 바둑고수들은 무엇보다도 마음상태를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패배주의에 빠져 있으면 악순환이 이어지므로 기분전환을 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것으로 보면 우리 국민도 ‘어렵고 괴롭다’는 말을 되뇔 것이 아니라 ‘희망적이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부정적인 말로 자기최면을 걸기보다는 도전정신을 불태우는 마음을 강화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프로기사들의 두 번째 노하우는 괴로운 가운데서도 자신의 실력을 강화하기 위해 꾸준히 연마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슬럼프기는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보강하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내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찾는 기회가 된다. 슬럼프 시기를 잘 극복하면 이와 같이 껍질을 한 풀벗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전열을 가다듬고 경제적 동력을 찾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지금 상황이 터널로 들어가는 슬럼프임을 지각하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이 지혜를 모아 새로운 동력을 찾았으면 한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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