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서른 다섯돌 사경헤매는 「국군의 아버지」|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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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군창설에 산파역을 맡았고 초대육군참모총장이자 첫「별」을 단 국군의 「아버지」이응준옹(95)이 노환으로 누운지 6개월째, 6·25 서른다섯돌을 앞두고 임종의 사경을 헤매고있다.
서울반포동550의27 잉꼬연립주택A동103호 자택, 이옹의 병상엔 60여년을 해로한 부인 이정희여사(88)와 장남 창선씨(63) 내외 등 가족들이 머리맡을 지킨다.
이옹이 병석에 누운 것은 지난1월.
한달전 병세가 중해지자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회복이 어렵다는 주치의의 의견에 따라 집으로 모셔왔다. 군의관이 1주일에 한번씩 왕진을 하고 있지만 이옹은 최근 병세가 더욱악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묽은 미음과 영양주사로 생명을 잇고 있다.
『병석에 누우시던 전날까지 16살때부터 써온 일기를 거르지 않던 분인데…』
부인 이정희여사(88)는 평생을 극기와 절도로 꼿꼿하게 살아온 군인남편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한말 1890년8월12일 평남안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뜻을 세우고 상경했던 이옹은 대한제국육군참렴(소령)으로 나중에 독립운동가가 된 추정 이갑장군의 집에 기식, 보성중(1회)을 거쳐 일본육사(26기)를 나왔다.
부인 이여사는 바로 추정의 외동딸.
일군소위로 임관한뒤 대좌(대령)까지 진급했고 해방후 미군정당국의 군사고문으로 초빙돼 국군의 출발인 국방경비대창설에 산파역을 맡았다. 정부수립후 이승만박사에 의해 초대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총장취임당시 이옹의 계급은 대령. 그러나 열흘후 국군의 첫 「별」을 달고 장군이 됨으로써 또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6·25때는 5사단장으로 전남광주에 근무하다 급보를 받고 참전했었고 55년9월 예편하자마자 체신장관에 임명돼 3년간 재임했다. 반공연맹이사장(67∼72년),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한뒤 현재 재향군인회고문·국방정책자문위원·통일원 고문 등을 맡고있다.
지난해 봄 재향군인회총회에 참석한 것이 이옹의 마지막 공식외출.
군인의 딸을 아내로 맞았던 이옹은 자신의 딸도 군인에게 시집보냈다. 국군 군번1번 이형근대장이 바로 이옹의 사위. 추정이 일본육사15기, 이옹이 26기, 이형근대장은 56기로 동문선후배. <김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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