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고아가 세계적 사진작가로|13세때 미에 입양한「존·장·매커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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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존·장·매커디」씨(45)는 6·25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세계굴지의 사진작가로 입신한 한국인이다. 1940년 함남함흥의 농부집안에서 3남1녀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51년 1·4후퇴때 피난길에 올랐다가 부모와 헤어졌다.
그는 3세위의 형과 함께미해군함정을 타고 거제도로가 수용소생활을 하다 형이 병사하자 완전히 외톨이 고아가 됐다. 우연히 거제도 수용소 미국장교였던「리처드·매커디」중위에게 입양돼 54년 13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인 양부모 밑에서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스웨덴 스톡홀름의 웁살라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매커디」씨는평소 관심있던 사진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했었다.
『대학시절 사진작가가 되는데 조금은 주저했지요. 밥벌이나 할수 있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어떤 분야든 최고가 되는것이 중요하다」는 지도교수의 충고에 힘입어 사진작가가 됐읍니다.』
그는 미국 워트슨 겁틸 츨판사에 의해 세계8대 사진작가의 한사람으로 선정될만큼 성장,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지도교수가 말하던「최고인」이되는 길에 들어서 있다.
그는 또 195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이슬란드의 작가「할도르·락스네슨 씨가『현대
사진의「템브란튼」』로 비유, 극·찬할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고있기도 하다.
이번의 세번째 모국방문은 재미한국인 무용가 이선옥씨의 선무를 주제로한 사진집『율동속의 명상-선무』를 출판하기 위해서다.
미국 뉴욕과 스웨덴 스톡홀름에 각각 집과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는「매커디」씨는 지금까지의 작품수가 4천여점이 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미굴지 회사들인 AT&T사, 워너통신사, 베커사를 비릇해 뉴욕의 해머화랑등에 영구소장되고 있고, 미샌프란시스코의 현대미술화랑, 클리블랜드의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여러 박물관과 화랑에 전시되고 있다.
그의 작품집으로는『도시의 황야』『남아랄라치아산맥』『아이슬란드』『아디론댁스』등 8권.
미묘한 색감의 조화와 깊은정서가 그가「템브란튼」에 비교되는 이유라는것이 사진평론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예술사진만으론 작가활동이 어렵지요. 그래서 광고등 상업사진도 곁들이고 있읍니다.』
그의 사진은 타임 라이프외에도 보그지, 포브스지, 포천지등 수많은 세계적 명성이 있는잡지에 실렸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광고·예술사진·초상사진등 제작주문이 줄을 잇고 있다고.『인물사진으로는「슐츠」미국무장관과 펩시콜라, 제록스사 회장등의 사진제작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또 그의 작품생활에서 고국의 4계절을 주제로한 사진집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이미 설악산등 한국의 명승지를 두루 촬영, 내년 4월께 이를 한국에서 출판할 단계에 와있다고 말했다.
1967년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인으로 살아오면서 모국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는「매커디」 씨는 모국어도 배우고 한국을 주제로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싶다고 말했다.
1967년 웁살라대재학시절만난 부인「브리트」씨 (스웨덴인) 와 사이에 2남을 두고있다는 「매커디」씨는『사진기 셔터 누르느라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혔다』며 끝이 딱딱해보이는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였다. <진창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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