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도록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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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랜만에 교육이 다시 신문 1면의 머리글로 올랐다. 하루하루 사태의 진전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정치에의 집착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 민족의 먼 미래까지를 설계해야하는 교육문제에 국민들이 다같이 눈을 돌려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앞에 닥친 중요한 현실문제인 입시제도가 개선될 희망이 엿보인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우리민족의 삶은 87년으로 약속된 정권교체 이후에도,88년 올림픽이 지난 뒤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지극히 자명하면서도 때로는 정치와 스포츠의 열기 속에서 마치 잊혀져가고 있는 듯 한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새로 발족된 교육개혁심의회와 문교부가 다같이 지금까지는 논의에서 배제되어왔던 고교평준화·내신제·학교의 자율권·학생의 선택권·학력고사 등 근본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볼 용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특히 반가운 일이다. 다만 신문지상을 통해서 얻는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된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안들이 실제로 정책으로 입안되어 시행에 옮겨지는 것은 어떠한 과정과 절차를 통해서인가 하는 점이다.
교육개혁심의회와 문교부의 관계란 명확히 어떤것인지, 중요한교육정책의 입안과정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의 한계란 어떤것인지 등의 의문이 생긴다. 국민이 가지는 다른 어떤 권리보다도 중요한 교육에 대한 권리의 관리를 행정부의 처분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정책입안과 집행절차에 관한 이런 근본적인 의문은 제쳐놓고라도 기왕에 뚜렷한 개혁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교육개혁심의회와 문교부에 반드시 당부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새로이 채택되든 간에 그것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기본권리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의 기본적 교육원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진 것이어야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교육에 관계되는 모든 시안은 단독으로가 아니라 상호연관성 속에서, 그리고 다른 정책분야와의 연계 속에서 종합적으로 심의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 후에 정책으로 채택되고 그 제도의 장·단점과 예측되는 부작용에 대한 계몽과 검토가 앞서야한다는 점이다. 세째는 개혁내용은 과감하고 본질적인 것이되 시행과정과 절차는 반드시 경과조치를 포함하는 단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정책은 국민과 정부가 다같이 공인하듯이 난항을 거듭해온 것이다.
4·19이후의 우리의 교육사를 돌이켜볼 때 우리의 교육정책은 항상 단말적인 정치적 고려에 종속되어 왔지 교육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리를 존중하고 신장한다는 면은 등한시 되어왔다. 국가적 견지에서 본다해도 필요한 인력의 수급이나 통제라는 견지에서만 정책이 추구되어 왔고, 국민적 삶에 대한 심정적 관리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빈 구호만이 채택되었지 교육제도나 시책은 그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 생각이 깊지 못한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단순히 남과의 생존경쟁에서 싸워 이기는 힘을 길러주는 도구로만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사회적인 견지에서 볼 때 교육의 기본목적은 인간끼리 서로 협동하고 사는 것이 싸우며 사는 것보다는 더 이로운 것임을 체험으로 설득시키며 그 방법을 가르치는데 있지 경쟁심을 기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맹수들끼리 가장 잘한다. 그런데 근년의 우리의 교육제도는 현행의 석차위주 내신제와 대학의 졸업정원제를 포함해서 바로 그 상대적인 경쟁심만을 돋우는 방향으로 흘렀지 끊임없는 자기연마를 통해 다같이 더 잘사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길러주는데는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행의 평준화 정책이나 내신제가 갖는 가장 큰 해악은 학력저하보다도 협동적 삶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파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 개선되는 입시제도에서는 이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 정책간의 상호 연계성과 다른 정책분야와의 관계, 국민의 전반적 사회적 성향 등을 충분히 고려에 넣지 않은데에서 말미암은 직접적 결과가 교육분야의 상대적 빈곤화, 교육자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의 추락이다. 진학기회의 평등이라는 단편적인 정의의 개념에만 집착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히 드러나는 사회에서 가진 사람의 돈이 학교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봉쇄해놓은 결과는 공적으로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국내 학교교육의 전반적 부실화와 교육자금의 해외유출이다. 재벌의 돈을 학교로 끌어들여 그가 기부한 돈으로 이룩한 시설의 혜택을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도 고루 입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없을까가 검토되어야 하며 학교의 자율권신장과 동시에 공립과 사립교육의 명실상부한 2원화의 방안도 이제는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돈이든, 인재이든 학교 밖의 자원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시책만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전체에 대한 최선의 교육기회의 평등한 보장이 된다.
입시제도의 개혁에서도 ,이제는 선지원 후배정 등의 기술적 논란의 낡은 궤도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능력과 적성에 맞게 교육시키고 필요 이상의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인생전체를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진학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가가 근본적으로 모색돼야 할 것이다. 행정적 절차는 복잡하더라도 교육 심리적 각도에서 학생들에게 이로운 것이면 채택하겠다는 자세만 선다면 교육의 선진국들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복수지원제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우리의 국민성을 운운하며, 입시제도 자체의 불비함을 변호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될 것이다.
어떠한 제도에라도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장점이 순수히 교육적인 측면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단점이나 댓가는 기본적인 교육적 고려와는 비교적 먼데서 나타나는 제도를 우리는 교육적으로 좋은 제도라고 하는 것이며, 반대로 행정적 편의나 단편적 정치적 고려에는 부합되나 교육 본래의 취지에는 어긋나는 것일 때 그 제도가 교육적으로는 나쁜 것이 되는 것이다.<이인호 서울대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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