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촌 어린이 놀이터 거의가 "낙제점"|유년위주·시설모자라 인기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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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파트단지 어린이들이 놀이를 잃어가고 있다. 83년 현재 전국의 아파트 수는 55만3천4백10가구. 아파트단지 안에 설치돼 있는 어린이 놀이터는 2천5백57개소로 평균 2백16가구 당 1개소 꼴.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어린이의 40%가 집안에서 놀며, 집밖에서 노는 어린이 중에서도 37%만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놀이터의 이용률이 낮을 뿐 아니라 함께 모여 노는 경우도 드물다.
어정문양 (11·서울 강남구 역삼동) 은 『생일파티 같은 것이 아니면 친구 집에서 모여 노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최지민양 (6·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은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어 혼자서 논다』 고 했다.
이처럼 어린이들이 놀이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놀이시설문제와 함께 아파트라는 환경적 요인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
임승빈교수 (서울대·조경학)는 『어린이 놀이터의 시설이 법규에 규정된 그네·미끄럼틀 등 최소한에 머물러 있으며 5∼9세의 학령기를 전후한 아동들에게 적합한 유년 놀이터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한다.
즉, 10대가 되면 기존의 놀이기구에는 흥미를 못느끼고 롤러스케이트· 자전거·구기 등 동적인 움직임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아파트 단지에는 이 같은 10대를 위한 놀이터가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기왕에 설치된 놀이기구도 획일화돼 있고 단조로와 어린이들의 다양한 놀이욕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원영교수(중앙대·유아교육학)는 『물리적 환경이 어린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고 말하고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이 수평적이 아니고 수직적이며, 엘리베이터의 이용으로 중간에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곧장 목적지까지 가곤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어울려 노는데 서투르다』고 설명한다.
그는 『아파트단지 안의 유치원 등을 자연과 가깝게 함으로써 물리적· 인위적 환경으로 어린이가 위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면서 놀이 에너지는 한정돼 있으므로 어렸을 때 실컷 발산해야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 자발적으로 일하지 못하며 커서도 환상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허천·강선보교수(강릉대)는『가족계획의 보급으로 핵가족화 됨에 따라 더불어 놀 형제자매 및 또래집단이 현저히 줄어든 데다 아파트생활이 주는 옥외공간의 협소화로 놀이공간이 박탈돼 가는 것도 놀이가 단절되는 요인』으로 분석했다.
한편 또래집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되찾아 주자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어 환영을 받고 있다.
2세 이상 유치원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서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아이놀이 모임」((354)9974)이 그것.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집을 놀이장소로 제공하고 시간 있는 어머니가 이들을 돌봐주는 형태.
이 모임을 기획한 박민향씨는 『요즘 어린이들이 함께 노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어 마련해본 것』 이라면서 공동놀이를 통해 적극성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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