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충격」 보고만 있을 수 없다"|미 법조계서 「문화적 변호」 논쟁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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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관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관습을 가진 아시아 민족들이 최근 대량으로 미국에 이민해 옴으로써 미국 형법에는 「문화적 변호」(cultural defense)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예컨대 이주민의 본국법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행위가 미국법으로는 중죄가 될때 그를 미국법으로만 다룬다는 것은 너무 혹독하다는 사법 실무자들의 견해가 이 새로운 개념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2년전 로스앤젤레스 부근에 사는 한 한국교포가 미국 어린아이의 고추를 만졌다가 「성범죄」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이때 한 한국학자가 한국에서는 어린아이의 고추를 만지는 것은 귀엽다는 표시로 아이의 부모까지도 용납하는 행위라고 진술해서 기소가 철회되었었다. 이것이 「문화적 변호」의 한 예다.
월남전이 끝나면서 라오스의 호몽 고산족 3만명이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지방으로 집단이민을 왔다. 그런데 이 종족의 특이한 혼인풍습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호몽총각은 마음에 드는 처녀가 있으면 집으로 불러들여 강제로라도 「첫날밤」을 겪음으로써 혼인을 성사시키는게 오랜 관습이라고 한다. 이때 처녀는 「완강히」 반항해야 처녀다운 처녀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혼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미국화한 처녀중에 경찰을 찾아가 자기가 당한 것은 「강간」이었다고 고발하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총각집쪽에서는 그것이 고래로 전해져온 혼인풍습이라고 반박, 미국 사직당국자를 당혹하게 했다.
로스앤젤레스 법정에서는 두아이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기도하다가 자기만 살아남은 「후미꼬」라는 일본여인에 대한 재판이 계류중이다. 이 여인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화가 나서 두 아이를 안고 바다속으로 뛰어 들었는데 아이들만 죽고 자기만 살아 남은 것이다.
LA경찰은 이 여인을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후미꼬」여인은 부모가 자살할 경우 아이들을 두고 자신만 가는 것보다는 동반자살하는 편을 더 관대히 봐주는 일본풍습을 내세우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한 월남남자는 부인을 때리다가 상해혐의로 구속되자 『내 마누라를 내가 때리는데 왜 간섭이냐』고 항의했다.
이밖에도 자식의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아시아인의 전통때문에 「미성년자에 대한 잔학행위」라는 미국법에 걸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법운용상의 갈등을 「문화적 변호」 개념으로 관용하려는 일부견해에 대해 반대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법해석에 신축성을 두면 『법을 모른다고해서 범법행위가 무죄가 될수 없다』는 법원리가 허물어 진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민1세대가 필연적으로 겪게되어 있는 문화적 충격을 사법 실무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교포들을 위해 약간은 다행한 일이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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