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어긋난 여야 「이념논쟁」|「성명」공방벌인 「문제발언」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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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 이철의원의 이른바「급진적」 발언에 의한 파동은 민정당과 신민당이 해명요구성명과 반박성명을 주고받는 정도로 일단 진정되었다. 그러나 이 발언파동은 앞으로도 재연될 불씨를 안고있어 정국의 향방에 따라 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주목거리로 남게됐다.
이번 성명전은 지난번 이민우신민당총재의 산께이신문회견으로 인한 여야성명전에 이은 제2라운드 접전으로 그 과정은 소리만 크고 결과가 없는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문제가 된 발언은 △이른바 민중해방이론이 바탕에 깔려있고 △권력주변과 군부를 비
난했으며 △현정권의 정통성을 비판한 내용등이었다.
이중에서 민정당측은 발언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고 본 민중해방론에 공격의 초점을 맞췄다.
민정당은 민중해방론이 학생조직인 삼민투의 「민중· 민주· 민족해방」 이론과 같은 것으로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폭력혁명을 제창하고있어 의회주의를 정면 부인하는 논리라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민정당이 내놓은 공개견문서는 삼민투가 사용하고있는「민중」 이란 말이 통상적인 뜻에서의 민중이 아니라 자본가· 신흥중산층·고소득근로자를 제외한 노동자· 영세상인· 도시빈민·중소상공업자·학생등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신민당의 민중과 삼민투의 민중이 같은 개념인가고 묻고있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민중이란 반민주적 독재체제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일반을 가리키므로 민중해방이란 독제체제의 타파를 뜻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이철의원의 발언에 대한 동조적인 옹호라기보다는 학생· 재야를 의식한 변명적 해석이라는 인상이 짙다.
따라서 「민중해방」 을 둘러싼 민정당과 신민당의 이번 논쟁은 초점이 서로 어긋나고 있어 공소할 수 밖에 없다.
민정당이 몰아붙이는 급진이론은 사실상 신민당의 당론이 아닐뿐더러 신민당안에서 상당수의 지지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이를 싸잡아 공격하려는 민정당이나, 적절치 못한 비유로 이에 응답하는 신민당이 모두「논점요취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엄밀히 따져보면 민정당의 공격논점은 신민당에 해당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따라서 신민당도 이 공격에 응답할 적절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신민 양당이 이 문제를 두고 한걸음도 양보하지 않는양 강경한 성명전을 펴는것은 실상 다른 효과를 염두에 두고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이 있던 날 민정당의원들이 가장 격한 반응을 보였던 대목은 민정당정권의 정통성과 권력주변에 대한 도전적 발언들에 대해서였다.
민정당측은 잇달아 제기되는 정권과 권력핵심에 대한 과격한 발언들에 대한 견제수단을 민중해방이라는 급진적 발언에 대한 집중공격에서 찾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말하자면 신민당을 「급진」으로 몰아붙임으로써 조성되는 경색된 분위기를 통해 체제부정 또는 체제도전발언을 봉쇄하는 효과를 거두고, 당외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불만과 압력을 해소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아울러 민정당측은 신민당안의 급진성향을 엄하게 비판함으로써 신민당을 급진재야의 영향권에서 끌어내는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을 「재야의 인질」 이란 상태에서 풀어내고, 특히 과격 학생들의 급진적 성향을 지지할 수 있는 세력을 국소화함으로써 양외 급진파에 의한 외풍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대한 신민당의 대응대세는 명료하지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신민당측이 미문화원점거 학생들의 비판을 충격으로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며 그에 따라 광주사태의 국정조사를 제의하는 등 원내 작전을 보다 적극화했다.
그러나 신민당도 학생조직인 삼민투의. 급진적 이론에 적극적인 동조자로 기우는 인상을 주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며, 다만 학생들의 지지는 확보해줘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문제가 학생세력에 대한 장외의 태도와 얽히게 되면 더욱 복잡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신민당측은 적어도 정권의 정통성 내지는 권력주변에 대한 비판에서는 한계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은 명백히 하고 있다.
표현의 기술적 측면에서 비록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더라도 위험수위나 「성역」과 같은것은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권도전세력으로서 자유로운 활동영역은 확보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본다면「민중해방」 을 둘러싼 이념논쟁은 앞으로도 학생문제등과 얽혀 간헐적으로 제기될 수는 있다 하더라도 민정신민당간의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되기는 어렵다.
이번 일련의 발언파동에서 결국 국회안에서『못할 말은 없다』 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민정당은 그 같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감수하고 말았다.
모든 문제를 장내로 끌어들인다고 주장해온 민정당으로서는 이를 저지할 뚜렷한 명분도, 효과적인 대응책도 찾지 못했다.
원만한 국회운영과 발언의 충격도를 저울질하다가 실기했으며 실제로 징계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에는 의석수등 여건이 충분치 않아 선택할 수 있는 조치의 폭도 넓지 못했다.
반면 신민당으로서는 장외세력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하겠다. 그들은 모호한 입장에서 맴돌았고 기술적인 저급성을 드러냈다고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발언파동에서 정통성이나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 국회안에서 별다른 충격흡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치열하게 제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났다. 앞으로 그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도리어 지나친 반작용을 불러 일으킬 우려도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우려는 이념논쟁에서 보다는 광주사태, 사면·복권, 개헌과 같은 정치현안이 구체화되어 절실하게 제기될 때 현실로 나타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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