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들의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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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럽신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축구장에서 편싸움이 벌어져 40여명이 죽었다. 유럽의 한가운뎨 브뤼셀의 헤이셀 스타디움에서 일어난일이다.
요즘 유럽은 때없이 뜨거운 여름이었다. 유럽 컵대회 결승전에 오른 영국 최강의 리버풀팀과 이탈리아의 유벤터스팀 대결이 몰고온 열기였다.
이런 대회때면 예외없이 온 유럽이 술렁거린다.
관광버스들이 동이 날 정도로 유럽의 방방곡곡에서 원정관중들이 몰려든다.
그런 인파는 아마 그라운드의 담장까지 무너뜨렸던 모양이다. 경기도 시작하기 전에 흥분부터 했던 관중들은 돌팔매질을 하고 편싸움을벌인 것이다.
「경기장 질서」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나 필요한 얘기로 알았는데 스포츠의 본고장에 수출이라도 해야겠다. 우리 정도가 아니다.
하긴 일찌기 축구전쟁이라는 것도 있었다. 1969년 남미 온두라스에서 벌어진 월드컵 예선전때였다. 온두라스팀과 엘살바도르팀이 시합을 하다말고 장내에서 싸움이붙었다. 이 싸움은 관중석에 불꽃을 튀겨 장외에서도 싸움판이 벌어졌다.
마침 축구시합을 중계하던 엘살바도르 아나운서는 그 장내, 장외 싸움까지도 고국에 중계했다.
이번엔 엘살바도르 군부가 가만히 있지않았다. 육군은 탱크를 출동시켜 국경을 포격했다. 공군도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이들은 전투기에 출격명령을 내렸다. 온두라스를 공습, 폭탄을 퍼부었다.
무려 1주일이나 계속된 축구전정에서 양쪽 희생자는 2백명이 넘었다.
이것은 세계의 옷음거리가 되었었다. 전장이 메인 게임, 시합이 오픈게임이 되었으니 말이다.
미국 철학자 「산타야나」가 영국을두고 빈정거린 말이 생각난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개성, 괴벽, 이단, 변칙, 취미, 유머의 낙원이다.』
이번 헤이셀 스타디움은 바로 그런 「괴벽」의 낙원이었던것 같다. 아니, 사람이 수십명 목숨을 잃을정도였으니 「개성, 괴벽, 이단, 변칙, 취미, 유머의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너무 몰입하면 결국 저마다 얼이 빠진 멍청이라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않고서야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일어날수 있겠는가. 유럽사람들은 그동안 스포츠광이 되어 신사체면같은 것은 내다버린지 오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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