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아트홀「햄릿」공연을 보고… 유민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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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늘의 우리 공연예술 수준보다 수십년 앞지르는 시설을 갖춘 호암아트홀이 드디어「셰익스피어」의 비극『햄릿』 (이해낭연출) 으로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시설에 걸 맞는 명작을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원로 연출에 의해서 하나의 장중한 제전으로 창출해 낸 것이다. 그동안 『햄릿』 은 국내무대에 10여번 올려졌지만 이번 만큼 정제된 공연은 일찌기 없었다.. 여태까지 극장시설이나 배우·연출가동이 『햄릿』 을 제대로 형상화하기에는 미흡했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공연은 한 나라의 연극수준을 가름해 주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이번 공연은 한국연극의 기존 수준을 훨씬 뛰어 넘은 것이라 하겠다. 첫째 배역진이 호화로움을 넘어 매우 잘 짜여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김동원 (왕) 황정아 (왕비) 유인촌 (햄릿) 유지인 (오필리어) 오현경 (폴로니어스) 등은 빼어난 연기자이다.
이들 중 유인촌과 오현경의 팽팽한 연기대결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근간이 되고 있다. 주역 유인촌은 단조로운 연기를 정열로써 커버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강만희 (호레이쇼) 김진태(묘지기) 등 조역들도 주연 못지 않은 연기력을 발휘해서 앙상블을 드높여 주고있다.
둘째로는 역시 리얼리즘에 능한 이해낭연출의 원숙성이다. 인간 감정의 세노까지 파고든 그는 긍정적 인생관을 바탕으로 해서 인생의 영면성이라 할 진실과 허위, 삶과 죽음, 선과 악, 신의와 배신, 사랑과 증오 등을 조화시켰다. 특히 연극적 관상을 삶의 진실에 맞춰 놓음으로써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켜 주었던 것이다.
세번째로는 튀어난 무대장치, 의상, 대·소도구 등의 화려함이 연극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번 『햄릿』 공연은 연극이 연극다움을 보여준 것이고 한국연극이 성숙한 단계로 접어 들었다는 신호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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