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등불이 고난의 길을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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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은 국제언론인 대표들에게 큰 감동을 준「로세스」씨의 골든펜상 수상 연설문을 요약한 것이다.
우선 이 순간은 저에게 매우 자랑스러운 순간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받쳐들고있던 「외로운등불」이 이처럼 찬란한 불빛을 발해 여러사람이 알아볼수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등불을 받쳐들고 있있던 한사람에 불과했읍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필리핀의 언론자유회복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어둡고 외로운 길을 심지를 돋우어가며 불밝힌 다른분들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와 함께 많은 다른 분들도 과거에나 현재에나 감옥을 드나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순간마다 권총이나 기관총의 난사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또한 우리의 가족들이 아내와 남편들, 아들 딸들의 용기에 대해 언급하지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같은 고통을 엄숙하게 받아들였으며 독재에 무릎을 꿇기를 거부했읍니다.
형극의 길을 걷고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약속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원칙들이 가져다 줄 명예뿐 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오늘 이자리에 함께 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같은 외로운 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만했겠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첫번째 대답은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너무나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13년전 필리핀에 계엄통치가 시작됐을때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와는 결코 공생할수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의 선의의 친구들조차 독재가 필리핀을 위해 좋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필리핀인들은 술과 노래와 축제로 잔을 가득 채우고 끌기를 좋아하는 미숙한 국민으로 얘기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필리핀인들에게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자식에게 필요한것이 무엇인지를 잘알고 있는, 종국적으로 약속된 땅으로 이끌수있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아버지같은 구세주말입니다.
이같은 것들은 우리가 믿고싶었던 단어들입니다. 우리들은 상당기간동안 제3세계 저개발의 제문제로부터 필리핀을 구해낼 수완있는 정치인의 행동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같은 단어들은 행동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자유의 말살은 특히 내게는 너무 가혹했으며 독재정권을 위해 치르는 댓가는 너무나 비싼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점차로 뛰쳐나와 우리들가운데 겨우 몇몇만이 언론자유의 회복을 위해 투쟁을시작했읍니다.
처음에는 이투쟁이 희망도 도움도 없는 외로운 싸웅으로 보였습니다.
쉽게말해 우리는 상어와 싸우는 정어리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언론자유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처음부터 앞날이 어두웠습니다.
왜냐하면 필리핀에는 4천5백만명의 겁많은 백성들과 1명의 폭군만이 살고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쏨드리건대 우리국민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결코 겁장이가 아닙니다. 우리국민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마치 물소처럼 무한정하게 인내심만 갖고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물소들이라해도 고통스런 굴레를 참고 견디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같은 한계는 지난 83년 반체제지도자「아키노」씨가 암살당하자 극에 달했습니다. 우리국민들은 드디어 속박의사슬을 부수기 시작 했습니다.
아직 우리가 충분한 활동을 벌일 수 있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우리앞에는 아직 싸워 이겨야할 수 많은 전투와 건너야할 수 많은 계곡과 넘어야할 수 많은 고지가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튼튼한 교두보를 확보해 놓았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이미 상당수의 반정부신문들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본인은 그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투쟁을위한 용기와 확신뿐만 아니라 지혜도 갖고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반정부 언론인들은 군대나 군관계기관에 의해 납치되거나 살해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반정부 언론들에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언론자유를 위한 순교에 대한 존경심만을 배가시켰습니다.
대통령령 1835호는「국가전복」이라는 범죄용어를 규정, 기결수의 격리수용 및 전재산 몰수의 근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국가전복이라는 범죄행위의 구성요건은 물론 군에 의해 정의되고 결정됩니다. 가톨릭신부와 수녀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기피인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거나 투옥되었으며 일부는 살해되기까지 했습니다.
살해된 사람은 바로 남필리핀의 북코타바토주 툴루난교구의 이탈리아인 선교사「툴리오·파발리」 신부였습니다.「파발리」신부의「죄」는 그의 신도들에게 사제로서의 의무를 다한것이었습니다. 이죄로 그는「민간가정방위부대」라고 완곡하게 불려지는 공정단에의해 무자비하게 사살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습니다. 본인은 필리핀으로 급히 돌아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많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적은 아직도 강력합니다. 거의 매일, 최소한 매주일 거리에서 성전에 참여하는 우리는 연막탄과 최루탄에서 곤봉과 소방호스, 그리고 총탄에 이르기까지 각종 상상할수 있는 모든 압제와 테러무기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용기와 언론자유가 끝내는 승리한다는 신념만을 안고 우리가 대통령궁으로 행진했을때 적은 전력을 다해 우리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수년전 우리의 숫자가 아주 적었을때는 무척 외로왔습니다. 이제 우리들 수는 늘어나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본인은 언젠가부터 낙관주의자가 됐습니다. 인론자유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다시 한번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가 이렇게 귀하고 값진 간주곡을 들려주는데 대해 감사하고자합니다. 이 미천한 사람에게 1985년「자유의 골든펜상」을 수여함으로씨, 우리의 모든 동료들은 요술장이의 마법지팡이에라도 맞은듯 커다란 격려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골든펜」은 필리핀에서 우리 모두가 간긱하고 있는자유의 잉크를 듬뿍적셔 힘차게 약동할 것입니다.
◇수상자약력
「호아킨·로세스」(Joaquin·P·Roces)〓1913년 근대 필리민신문의 아버지[돈·로세스」의아들로 태어나 필리핀과 영국에서 교육받음. 아시아 최대의 영문일간지 마닐라 타임즈를포함한 필리핀 최대의 신문그룹을 상속 필리핀신문협회장, 아시아신문재단(P F A)의 회장, 필리핀통신사(P N S)창립자 사장등을 역임. 1972년 계염령선포후「마르코스」에 의해 마닐라 타임즈가 폐간된후 반[마르코스」비폭력민중운동을 지도「마르코스」에 의해 몇차례 투옥, 자택연금을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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