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안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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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경제에 대한 논쟁이 매우 활발한 것 같다. 최근 논쟁의 특징은 단순히 경기추세나 이의 대응책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취해온 경제정책의 기본기초에 대한 시비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룻 성공적인 경제는 정부· 기업·가계의 공동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경제의 현위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논쟁의 출발점은 요즘 경기상황에 대한 진단인 것 같다. 우선 주요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도·소매물가는 연2%미만의 안정세를 계속유지하고 있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도 비교적 착실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물가와 내수부문에서는 일단 별문제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수출이 4월말현재 전년동기에비해 5·7%나 감소하였기 때문에 성장과 국제수지 추세가 당초 예상보다 다소 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논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수출부진에 대한 해석이라고 보여진다.
일부에서는 수출이 최근 부진한 것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한다. 우리 경제가 여러가지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작년만 해도 20%나 증가하였던 수출이 금년 들어 몇달사이 구조적 문제 때문에 갑자기 부진해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최근의 수출부진은 미국에서의 경기하락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인 듯싶다. 미국경제는 84년 1·4분기중 전후 가장 높은 수준인10.1%의 실질성장을 하였고 수입액도 36%나 증가하였던 반면 금년 1·4분기에는 성장률이 1.3%,수입액의 증가율은 6%로 각각 크게 둔화되었다. 다행히 일본과 서구제국에서 경기가 다소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간 미달러화 강세의 영향으로 우리 원화가 이들 국가의 통화에 대해 평가절상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수출을 늘리는데 있어 장해 요인이 되고있다.
요즘 경기가 부진하므로 경기부양시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최근 경기둔화의 직접적 원인은 수출부진이고 국제수지의 개선이 거시경제운용정책의 핵심과제가 되어야하는 현시점에서 통화나 정부지출을 늘려 내수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최근의 수출부진을 타개하는 길은 단기적으로 미달러화의 강세추세와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강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장기적으로는 각산업부문에서 꾸준히 생산성을 향상시켜 수출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경기에 대한논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러한 경기논쟁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가 단기동향지표에 너무 민감한 나머지정책당국으로 하여금 지나치게 성급한 정책결정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번에도 몇 달간 수출이 부진하다고 해서 마치 한국경제가 당장 파산이라도 하는 것같은 해석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만일 이를 전제로 대응책을 마련한다면 마치 간단한 감기증세때문에 병원을 찾아간 환자에게 정확한 진단도 하기 전에 필요이상의 독한 주사와 약을 주는 의사의 경우와 같이 우리경제에 불필요한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경제를 「남비경제」 라고 혹평을 하는 것을 듣는다. 이는 우리경제가 실제로 깊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경제를 진단하는 눈이 때로는 너무 근시안적이었다는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좀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전환기를 맞이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 교수한 분이 얼마전하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이 국내에 있을 때는 우리 경제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얼마간 외국 출장을 가보니 한국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경제의 현황과 장래전망에대한 평가를 국내에서보다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 좋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물론 지나친 낙관이나 과신은 금물이며 항상 문제의식을 갖고 좀더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 도를 지나치면 매사에 자신을 잃고 충분히 가능한 것도 이루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
계속 나빠지고 있는 대외경제여건하에서 우리는 경쟁력을 잃어 가는 제품과 산업으로부터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산업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이런 일은 자유로운 경쟁과 창의의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한다. 그러려면 이제까지 이룩한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시장원리에 좀 더 충실한 방향으로 경제운용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남과의 경쟁을 통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정과 개방을 경제정책의 기본골격으로하여 전환기 경제운용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좀더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하는가에 정책당국은 물론 국민 각계 층의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서상목 <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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