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귀걸이 코걸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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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위해 신축중인 법원의 새청사는 엘리베이터를 저물대 모양으로 설치토록 설계되어 있다.
변호사들이 달고 다니는 배지의 한 가운데에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저울이 그려져 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가슴에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자랑스럽게 달고다니는 배지에 저울대를넣은 것은 「법집행의 생명은 형평에 있다」는 것을 법조인 스스로 늘 깨우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서울예일여고·환일고교 소유주이자 교장인 김례환씨(62)의 외화 밀반출 공금 유용 사건이 보도된 9일하오 신문사에는 독자들의 톤 높은 전화가 빗발쳤다.
『교육자가 그럴수 있느냐』
『많은 액수를 해외로 빼돌렸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내 아들은 법고친다고 4만달러를 갖고 나가려다 1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는데 억울하다』 검찰수사에서 나타난 김씨의 외화 밀반출 액수는 11만달러이고 학교공금 유용액은 2억여원.
현재 검찰의 외화 밀반출 사법처리 기준은 유출 액수로 따져 내국인은 1만달러, 외국인은2만달러 이상이면 구속 수사토록 되어있다. 최근 검찰 최고간부는 「사회악 소탕령」을 내리면서 외화 도피를 주요 범죄로 지적하는등 기회있을 때마다 외환 범죄에는 「구속 수사」를 지시했었다.
『40년간 사학(사학) 발전에 이바지해 온 김씨를 구속할 경우 교육계에 파문이 크다. 김씨 스스로 피해를 모두 판상하고 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해서 불구속 수사키로 했다.』
검찰관계자의 말처럼 사람에 따라서는 경제적 손실을 주거나 「나쁜 이름이 매스컴에 오르내려 손가락질 받도록 하는 것」이 구속 옥살이 처벌보다 더 가혹할 수도 물론있다. 또 모든 형사사건은 불구속 수사가 대원칙이고 법에도 증거 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있을때 「구속할수도」있도록 되이 있다 (형소법 제70조). 인신구속은 그 본래 목적이 법정에의 출석과 자유형 집행의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83년 한햇동안 구속된 11만9천3백52명중 1번까지 59%인 7만2천여명이 불기소 집행유예등으로 풀려나 「불필요한 구속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계속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법집행의 일관성이나 형평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반드시 지겨져야 한다. 검찰이 정해놓고 국민들과 약속한 처벌기준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법은 「귀걸이 코걸이」식의 자의에 떨어질 것이고 법에 대한 신뢰는 기대할수가 없게 된다.
독자들의 전화를 받으면서 검찰이 말하는 금시의 교육자로서의 공로와 불구속수사의 형사법 대원칙을 입이 닳도록 설명했지만 뜻밖에도 공감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신성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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