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조선·해운 구조조정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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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해운·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늦어도 많이 늦었다. 이미 개별 기업 단위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의 골이 깊고 크다. 거제·울산엔 닥쳐올 실업의 공포가 가득하다. 부실을 혼자 떠안은 산업은행은 만신창이가 됐다. 무사안일 국책은행, 나 몰라라 정부, 선거에만 정신 팔았던 정치권의 합작품이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산업 전체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필요하면 과감한 ‘헤쳐 모여’도 단행해야 한다.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국내외의 판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해운은 국제 해운동맹 체제로 움직인다. 동맹에 끼지 못하면 항만·물류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해운동맹의 4강 구도는 최근 3강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존 최대 해운 동맹 ‘2M’에 중국·프랑스 선사의 새 동맹 ‘오션’이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이 둘은 이미 회원 가입을 끝냈다. 한진해운·현대상선은 내부 부실 문제에 허덕이다 어느 쪽에도 끼이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독일 선사 하파그로이드가 이끄는 제3의 동맹에 줄을 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맹이 완전히 짜이기 전에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조치가 마무리돼야 한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또 한번 어정쩡한 봉합에 머물거나 섣부른 매각·청산 등의 절차를 밟을 경우 경쟁자인 중국·일본에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조선사 간 중복이나 과잉 설비 문제를 어떻게 할지, 중국·일본에 비해 한국 조선의 경쟁 우위가 무엇이고 어느 분야를 살릴지 제대로 따져야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2008년 이후 조선 구조조정은 사실상 대증요법으로 일관돼 왔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STX조선·성동조선해양·한진중공업 등 개별 기업의 손실을 메워주는 식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정부는 원점에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재검토하기 바란다. 산업을 재편한다는 각오로 큰 그림을 그리되 실업대책과 재원 조달 등 구체적 방안과 일정을 국민 앞에 내놓고 평가받는 게 순서다. 이번에도 말만 하고 못해 낸다면 정부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