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혼한 남편 괴롭히면 새 부인에게도 위자료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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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중앙일보]

이혼 뒤 전 남편을 협박한 여성이 전 남편의 새 부인에게 위자료를 주게 됐다. 새 부인을 직접 협박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에게 정신적 피해를 유발했다고 법원이 판단함에 따라서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 A씨와 2009년에 합의로 이혼한 B씨는 2014년 4월부터 A씨에게 “대학교에 들어가는 딸의 양육비를 올려주고 만 20세가 되는 딸에게 책 판권 등의 재산을 물려주라"고 요구했다. 이에 A씨는 “이미 빚이 많아 양육비를 올려주기 힘들고 재산은 지금의 아내에게 주기로 했다”며 거절했다.

B씨는 이 과정에서 이듬해 2월까지 전 남편 A씨에게 50차례 넘는 협박성 휴대전화 문자와 e메일를 보냈다. ‘대학 정문 앞에서 딸에게 용돈조차 안 보내는 교수에 대해 피켓을 들고 물어보고 싶다’ ‘여러 대학교 교수들에게도 설문지를 돌려서 물어 볼게’ 등의 내용이었다. 나아가 ‘자식을 가져본 적 없는 여자가 어찌 어미 맘을 알겠어?’ ‘내 딸 살 뜯어먹고 사는 까마귀처럼 구는구나’ 등 새 부인을 직접 비난하는 글도 A씨에게 보냈다.

그러자 A씨의 부인은 B씨를 상대로 협박 및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금 5000만원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서울동부지법은 “문자메시지가 전 남편의 행위를 직접 비난한 것일 뿐 현 부인을 협박한 게 아니다. 그 글을 A씨 부인에게 보도록 한 게 아니어서 명예훼손 또는 모욕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원소패소였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 임성근)는 “B씨는 A씨의 현 부인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와 그의 부인은 가정 내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남편이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을 알아 부인도 정신적 피해를 봤다.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여자’ 등의 표현은 인격적 가치에 대해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 평가를 침해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임장혁 기자ㆍ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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