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인사이드] "애인하자" 여고생과 성관계한 40대 남성 성폭행 혐의 무죄…이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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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중앙일보]

26살 연하의 여고생과 성관계를 한 40대 남성에게 '위계에 의한 성폭행'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간호학원에서 수강생 관리 등을 하던 행정원장 김모(44)씨는 지난 2014년 4월 오후 9시쯤 수강생 A(17)양 에게 실습실 청소를 하라고 시켰습니다. 청소를 마친 A양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남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한 뒤 성관계를 했습니다.

그 뒤로 김씨와 세차례 성관계를 한 A양은 얼마 후 사회복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A양은 한부모 가정 자녀로 이 학원을 무료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그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에 의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A양은 김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자살 시도를 해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씨의 공소장에는 그가 A양에게 “네가 나랑 사귀면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옷도 사줄 수 있는데…. 그리고 좋은 곳에 취직을 시켜주고 기숙사가 딸린 좋은 취업 자리도 알려줄 텐데.”라고 말하며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고 적혔습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A양에게 취업 등을 빌미로 강제로 관계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 판단 역시 1·2심 모두 무죄였습니다.

1심을 맡은 서울동부지법은 “피고인의 말이 거짓말 같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는 없고, 범죄 사실은 법관에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이 사건에서 직접 증거는 사실상 피해자 A양의 증거가 유일한데, 재판에서 '공소 사실과 같은 내용을 김씨가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전혀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기관의 유도에 따라 김씨가 위력을 행사했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점점 과장된 것 같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 A양이 사건 이후에 김씨의 요청에 따라 그를 '오빠'라고 부른 점, 함께 음식을 사먹고 학원에도 정상적으로 다닌 점도 고려했습니다.

검찰은 ”자신보다 20살 이상 연상인 김씨와 성관계를 할 만한 아무런 친밀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빨리 취업해야 하는 A양은 어쩔 수 없이 간호학원을 계속 다녀야 했다”며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김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이원형)는 최근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피해 시점으로부터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A양의 기억이 흐려졌을 수도 있다고 해도 김씨가 행사한 위력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진술하지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김씨는 A양보다 26살 연상으로 두 사람이 성관계를 할만한 친분이 있다거나 A양이 김씨의 성관계 요구에 응할 만한 뚜렷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고, A양이 이 사건 이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것만으로 김씨가 A양의 자유의사를 제압해 성관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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