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점쟁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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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도인 점쟁이 5명이 출입국관리법위반혐의로 벌금을 문 뒤 추방됐다. 「외국인의 천국」인 한국에서 바이어를 가장해 한몫 보려던 저들의 소행이 괘씸하다.
하지만 그런 외국인 점쟁이들에게 놀아난 우리의 모습도 떳떳한 건 아니다.
인도인 점쟁이들은「요가훈련을 받은 시크교도」라고 한다.
시크교가 인도 고유의 힌두교와 이슬람의 교리를 종합한 종교란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시크교도는 황금사원의 참살과「간디」인도수상의 저격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들이 점과 가깝다는 것도 이해됨직하다. 인도에 점성술이 전해진 것은「알렉산더」대왕의 동방정복에 따른다. 칼데아인의 점성술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에 들어갔다.
5세기 인도점성술사「아르야바티야」의 점성술서『아르야바티야』도 바빌로니아 점성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 특색은 황도12궁의 1궁을 3등분하여 36궁으로 만든 것이다.
유럽의 점성술이 그리스도교의 압제 하에 질식하는 동안 아랍과 인도세계에서 이슬람의 보호 밑에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 점성술사의 기록이다.
그러나 인도인 점술가들이 그들의 고유한 점성술서가 아닌 한영본의 십이간지 점술자료로 손금과 관상을 보았다는 것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 속임수다.
점성술을 과학으로 보는 사람들은 점술가의 개인적 의견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인도인 점술가가 최고 3백달러(26만원)의 점채를 받아낸 것은 가상하다할까.
세계적으로 점성술을 비즈니스로 성공시킨 사람은 17세기의 영국인「월리엄·릴리」가 꼽힌다.
그는 내란의 시대를 통해 점성술을 대중 상대의 비즈니스로 만들고 출판과 개인상담으로 성공했다.
그는 의사의 카르테처럼 케이스 북을 남겼다. 거기엔 손님의 이름, 생년월일, 시간과 상담내용이 적혀있다.
상담은 1회, 1건, 15분 이내로 하고 가난한 병자는 상담료를 받지 않았지만 능력에 따라 1실링에서 반크라운까지 받았다. 반크라운은 당시 변호사의 상담료와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정치·경제관계 상담에는 큰돈을 받았다. 1백파운드를 받은 때도 있었다.
그의『그리스도교 점성술』은 성서보다 많이 팔린 시절이 있었고 2백년간 점성술사들의 교과서가 됐다.
그 같은 성공이 점술가의 꿈일지는 모른다.
하지만「릴리」가 의사나 변호사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도우려 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다만 일본점이 대학가를 휩쓰는가 싶더니 이번엔 인도점이 무역회사들을 쓸고 다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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