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부총리까지 동원, 35억 가로챈 국제 사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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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필리핀 경찰에 폐쇄회로TV(CCTV)를 납품하도록 해주겠다”며 한국업체로부터 약 35억원을 받아 가로챈 국제 사기단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업체를 속이기 위해 캄보디아 부총리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필리핀 경찰에 CCTV 납품” 속여
수의계약 뒷돈 명목 18차례 돈 뜯어
검찰, 50대 사업가 구속 공범 수배

인천지검 외사부(부장 김종범)는 사기 혐의로 무역투자 사업가 최모(53)씨를 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검찰은 캄보디아로 도피한 공범 양모(45)씨를 기소중지하고 인터폴에 지명수배를 요청했다.

검찰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3년 1월 최씨는 CCTV 업체 대표 전모(55)씨를 만나 사업 아이템을 제시했다. 최씨는 “필리핀 경찰청이 자국 전역에 CCTV를 5000대가량 설치하는 사업에 참여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의계약 방식이라 현지 공무원들에게 기부금 등을 줘야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해 8월까지 전씨는 최씨에게 총 18차례에 걸쳐 35억원가량을 건넸다. 양씨는 이 돈을 현지인 명의로 개설한 캄보디아 계좌로 송금해 따로 관리했다.

전씨가 사업 성사 여부를 의심하자 이들은 캄보디아 정부에서 준 훈장과 현지 고위 공무원들과의 친분을 내세웠다.

최씨는 “캄보디아와 필리핀은 모두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이라 캄보디아 부총리가 필리핀 사업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서 2013년 당시 캄보디아 부총리였던 N과 전씨의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있는 부총리 관저에서 약 1시간 동안 모임을 가졌다. 최씨는 전씨에게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주고 2012년 받은 캄보디아 정부 3급 훈장도 보여줬다.

하지만 최씨에게는 사업권을 따도록 해 줄 능력이 없었다. 사업에 진척이 없고 최씨와의 연락이 두절되자 전씨는 이들을 한국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한국에 잠시 들어온 최씨를 붙잡아 지난 3월 구속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2009년부터 여러 국내 업체들에 태국·미얀마·필리핀 등에서 CCTV나 디지털도서관·가로등 설치 사업을 하도록 해 주겠다며 사업추진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돈을 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과 사법공조 협약을 맺지 않은 캄보디아에서 자금을 관리해 계좌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금 관리책 역할을 맡은 양씨가 붙잡히면 국내로 송환해 자금의 사용처 등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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