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환점맞은 한-중공관계|구종서 <본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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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정치에서 어떤 행위를 선택하거나 평가하는데는 전통적으로 두개의흐름이 교차돼왔다.
이상주의 (utopianhsm)와 현실주의 (realism) 가 그것이다.
이번 중공어뢰정 사건을 놓고 우리 정부는 철저히 현실주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그것은, 실용주의적인 중공의 입장과 쉽게 접합될수 있었다.
이상주의가 여론과 규범·도덕을 앞세운다면, 현실주의는 힘과 경험, 그리고 가시적이고 현존하는 국익을 중요시한다.
여론은 가변적이고 무책임해서 신뢰할수 없고, 규범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며, 도덕은개인들의 행동기준이기 때문에 국가가 거기에 따를 필요는 없다는것이 현실주의의 입장이다.
어뢰정사건은 규범으로서의 국제법과 도덕으로서의 인도주의, 그리고 우리의 국가적 이익과논리가 균형있게고려돼야할 미묘한 문제였다.
정부의 조치는 주변국가와의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선린적이고, 과거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며, 현재와 앞으로의 국익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실리적이라고 할수 있다.
정부는 근년들어 발전돼온 양국의 원만한 관계를 보전하고 확대시켜 나간다는 입장에서 이번 사건처리에 임했던것 같다.
10억의 거대한 상품시장과 한반도문제에 미칠수 있는 중공의영향력, 그리고 86·88년의 체육행사등을 고려했을것도 명백하다.
그러면 정부의 처리가 올바른것이었을까.
그 해답은 앞으로 전개될 한-중공관계의 양상과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속에서 얻을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한-중공관계 전망에는 83년5월의 민항기 사건이후 전개된 양국관계가 참고될수 있다.
확실히 민항기 사건은 한-중공관계의 전환점이었다.
그후의 각종 국제회의에는 관용여권을 가진 정부 관리를 포함한 양국대표와 보도진에 상대방 국가 출입이 허용됐다.
체육분야에서도 수영·농구·축구선수들의 상호방문이 잇달았다.
중공은 민항기사건발생 3일후 일본을 통해 서울에서의 직접협상을 제의했다.
이번엔 제3국을 거치지 않고 사건당일홍콩의 우리 영사관과 직접 접촉을 개시하여 협상케 됐다.
민항기때 양국 합의문서엔 「대한민국」 호칭이 사용됐다.
이번에도 중공은 그들의 문서에서「대한민국」 이라했고, 영해침범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무처리가 끝난 3월28일엔 외무성이 감사 성명을까지 냈다.
수교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것들은 모두 우리 주권의 존중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상의 국가승인이기도 하다.
이것은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일컬어온 중공의 「하나의 한국론」 이 사실상 무너져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같은 일련의 현상은 어뢰정 이후의 양국관계 진전을 낙관할수 있게하는 요인들이다.
어뢰정 사건을 한-중공관계발전의 제2의 전환점으로 기대해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상호관계로보아 이미 교류되고 있는 경제·체육분야에서는 더 큰 개방이 예상되고, 학술교류나 이산가족문제등 비정치분야의 협력은 더욱 가속될것 같다.
그러나 중공은 아직도 북한의 강력한 맹방이며, 북한은 한반도문제에 관한한 중공에대해 상당한 견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수는 없다.
중공의 대외관계에는 3개의차원이있다.
「동지 대 동지」(comrade-to-comrade),「국가 대 국가」,「인민 대 인민」관계가 그것이다.
공산국가와의 당차원의 관계가 동지관계라면 수교중인 비공산국과의 정부차원의 관계가 국가관계다.
중소분쟁후 대소관계는 국가관계로 격하시켜왔다.
인민관계는 주로 미수교 비공산국과의 민간차원의 관계다.
한국은 이제 이 차원의 초기단계에 들어가고있는 중이다.
중공이 대한교류에서 정치와비정치를 엄별하고 정부간 접촉은 불가피한 돌발사태에 국한시켜온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한다.
중공이 꺼려하는것은 적대적인 세력이 남한에 등장하는 사태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은 이제 적대세력이 아니라고 중공은 인식하게됐다.
「4개현대화」 달성을 위한 실리외교 단계에 들어선 중공이 앞으로는 더욱 폭넓게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모든 나라와의 정상관계를 모색하는 전방위외교를 지향해 나갈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에서는「2개의 한국정책」 을 통한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한-중공관계를 더욱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중공은 물리적인 규모가 크고 정신적인 뿌리가 깊은 나라다.
거함은 회전반경이 길고 급선회가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한번 방향을 틀면 되돌아서기도 쉽지 않다.
그런 중공이 이제 우리를 향해 방향타를 잡았다.
그것을 어떻게 유도하고 대응해 나가느냐가 우리 중국정책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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