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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고려대교수·경제학자>|경제학자는 무용지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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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동안 줄곧 쌓여오던 경제학자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이제는 무용론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무용론은 국내에서도 가끔 듣게 되지만 바로 근대경제학의 본고장이라고 할수 있는 미국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특히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학자들이-현실에 어두워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든가,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든지, 우리의 경제문제를 너무미국 시각으로 보아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등의 건설적인 비난은 오래 들어 왔지만 쓸모가 없다는 전면적인 공격은 최근의 일이 아닌가싶다.
그러면 무용론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많은 경우 무슨 소리인지 잘알아듣기도 어려운데 그나마 열이면 열,전부 다른 의견을 고집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제변동에 대한 예측은 으례 틀리게 마련이라는 불신과 불만이 무용론의 이원이 되고 있는것 같다.
하기는 이런 불만에도, 일리는있다. 최근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 경제에 있어서든 내로라하는 경제학자와 연구소가 발표하는 경제전망 쳐놓고 맞은 적이 없다. 틀려도 조금씩 틀리는것이 아니라 때로는 방향마저 잘못잡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고 보니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을 믿고정책을 운영한 당국이나 사업계획을 세웠던 기업의 원망이 높아질수 밖에 없다.
더구나 소득·물가·국제수지등 경제전체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거시경제학은 주류가 무너져 표류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론이있으면 반론이 있게 마련이지만 요즈음처럼 극을 달리하는 색다른 주장들이 난무한 적은 찾아보기 어려울것 같다.
거시이론의 주류가 도전을 받는 과정에서 정책당국도 방향감각이 무디어져 앞뒤가 맞지않는정책을 운영하기 일쑤고,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어떤 특정주의·주장에 치우쳐 다른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는 독선적인 편협성을보이고 있다. 이론적인 체계가 서있지도 않은 공급경제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미국경제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근대경제학의 주류가 불신을 받아 왔는가를 쉽게 짐작할수 있다.
그러면 경제학자는 정말 쓸모가 없는가? 필자는 최근에 알고 있는 무용론은 아무런 근거도 없고 오히려 크게 경계해야할 풍조라고 본다.
우선 경제학의 기본토대가 되는 미시경제학, 즉 가계와 기업의 행태와 개별시장에 있어서 가격결정을 분석하는 경제이론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현실생활에있어서의 응용폭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전반의 흐름과 부문간의 교호작용을 분석하며 정책을 다루는 거시경제에있다.
거시경제이론의 주축을 이루어왔던 「케인즈」 의 경제학이 경제흐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여 현실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기 어렵게 된지 이미오래되었다. 「케인즈」 이론을 대체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여러 이론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었으나 새로운 이론들이 대부분 현실경제와 큰 괴리를 보여 설득력을 잃고 있다.
즉 거시경제학은 기존질서가 무너지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세를 창조하기 위한 진통을 겪고있다. 어느 학문이고 이러한 진통은 주기적으로 겪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기적인 문제점을 과장하여 무용론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편협한 단견의소치에 불과하다.
예측의 부정확성에 대해서도 할말은 많다. 우선 7O년대부터 계속겪어왔던 석유피동을 비롯한 여러외부적인 충격이 미치는 구조적인 변화의 영향을 파악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혀·예상할수 없는 변화가 도사리고 있는한 예측은 정도의·차이는 있겠으나 누가하든 틀릴 가능성을안고 있다. 예측은 누구든 할수있고, 또 때로는 비전문가의 예측이 더 정확할수도 있다. 그러면 잘 맞춘다는 그 이유만으로예측의 과정은 무시하고 비전문가에 의존할 것인가?
예측의 정확성도 증요하다. 그러나 예측의 방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본이론이 과학적이며 설득력이 있어야 예측은 뜻이 있다고 하겠다. 경제전문가를 복술가와 동일시하지 않는이상 예측의 부정확성은 경제학자 무용론의 이유가 될수 없다.
경제학자 무용론을 왜 경계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무용론이 경제정책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위험을 내포하고 있기때문이다.
이론이 난립되어 있을때 일수록 상식을 벗어나는 주장과 논리가대두되기 쉬우며 이러한 주장은 흔히 경제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용된다. 즉이 정책은 저 이론으로, 저 정책은 이 주장으로 무엇이든 합리화 될수 있는 위험이 뒤따르게된다.
이럴때 경제학자는 비과학적인 사이비이론을 가려내고 정책당국이 상반되는 의견이라도 모두 열심히 듣고 건전한 상식의 테두리안에서 남과 우리의 과거 경험을 존중하면서 정책결정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는 견제세력으로서의 역할을 맡아야한다. 정책의 과오를 범하지 않고, 잘못된 정책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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